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은 말 그대로 믿음의 조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의 조상에게 약속하시기를 그 후손이 바닷가의 모래보다, 하늘의 별보다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바울 사도가 율법과 복음, 행함과 믿음이라는 주제 속에 아브라함을 끌고 온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육신의 혈통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을 두고 하신 말씀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의미인지 논하고자 함이다. 물론 바울 사도의 의도는 육신의 혈통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바울 사도는 단호하게 육신의 혈통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갈 3:7)

 

바울 사도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육신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돌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사람은 혈통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믿음으로 난 자들이라는 의미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9)

 

이로 보아 비록 육신의 혈통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민족을 통행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나, 어디까지나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아브라함의 자손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일 뿐 눈에 보이는 육신의 혈통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의지나 본질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보는 관계로 육신의 혈통이나 성별로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나눈다. 이런 어리석음은 단지 중동지방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예수님 및 사도들의 시대나 그 이전 세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도 목사라는 육신의 신분 그 자체로 하나님의 종이라는 권세를 쉽게 줘 버린다. 그러다 목사나 장로들의 일탈 앞에 허무해 하기도 한다. 그런 신분이나 자격이 하나님의 의로움을 담보하지 않는다.

 

바울 사도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혈통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신 것이 육신의 혈통이 아니라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던 내용, 곧 믿음의 대상은 육신의 자녀가 번성하는 것이나 아브라함 자신과 자손이 육신적으로 풍족할 것이라는 것을 믿었던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약속은 쌍방이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약속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시겠다는 것을 수동적으로 믿고 순종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롭게 여기셨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후손은 당연히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오늘날 사람이 자신이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실 것이라고 믿는 믿음은 근원적으로 아브라함의 믿음과 다르다. 우선 방향이 반대다. 하늘의 뜻이 땅(흙으로 창조된 사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드린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고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하신다는 모양이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장사>라고 하셨고, 사무엘은 제사보다 순종이 나은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런데도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을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내용도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은 하나님의 무엇을 믿는지 불분명하다. 이런저런 말들을 하겠지만 결론은 하나님을 믿으면 육신이 잘 된다는 것이다. 육신이 잘 되는 것을 바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육신으로 하나님과 거래를 한다. 육신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에 살 동안에 복을 주신다고 믿는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일반적인 믿음의 내용이다. 무엇보다 그것이 육신으로 의로워지는 신앙의 본질이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의 약속은 육신의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것은 지시할 땅으로 가라였다. 지명을 일러 준 것도 아니고, 좌표나 방향을 알려 주신 것도 아니다. 그냥 막무가내로 지시할 곳으로 가라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믿은 것이다. 즉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은 지시할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순종하겠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흙으로 지음 받은 인생으로 하나님께서 정한 인생의 정체성이 나에게 유익하고 의미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존재 목적,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뜻이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임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한 인생의 운명이 내 인생의 목적이고 의미다. 그리고 그 약속의 실체는 예수님께서 보이셨다. 십자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