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ginning - 빛이 있으라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질그릇의 선택 Date : 2020. 6. 21. 04:00 Writer : 김홍덕
질그릇의 선택
국내도서
저자 : 김홍덕
출판 : 바른북스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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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육신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사람이 살아 있다고 여기시지 않는다. 육신에 생명이 있는 시간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신 목적을 깨닫는 기회의 시간이다. 하나님께서 삶을 주신 이유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육신의 세월은 하나님의 태초가 시작되 지도 않았고 빛도 없고 어두운 시절이다. 그 시간에 속한 삶에 “< 빛>이 있으라”고 하시므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인식이 시작되고그 인식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된다. 삶의 어느 순간, 어떤 환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는 순간이 바로 그때다. 그리고 말씀대로 빛이 있게 되는 순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때가 성경이 말씀하시는 태초다. 아브라함의 일로 보면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을 들을 그때가 바로 “빛이 있으라”고 하심과 같다.


빛은 ‘인식’이다.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인지할 수 없다. 이는 육신의 시력뿐 아니라 지식이나 사고의 세계에도 동일하다. 컴퓨 터를 모르면 컴맹이라고 하고, 글자를 모르면 문맹이라고 하는 것은 컴퓨터나 글자에 대하여 인식이 없고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눈은 잘 보이는데 어둡다고 하는 것은 어둡다는 것은 인지하고 인식할 수 없는 상황이나 존재라는 말이다.


빛이 있으라고 하기 전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인식하고 인지하기 전까지 사람의 상태는 어둡고 혼란스러운 상태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 사람은 인생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어두움에 있고, 삶의 목적과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우왕좌왕하듯 혼란스럽고 바쁘게 살지만 정작 늘 공허한 인생을 산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빛을 인식했다는 것은 자신이 빛 없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상은 어두운데 자신이 빛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빛은 의미가 없다. 예수 님을 만나서 거듭난다는 것과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고백한다는 것도 자기 안에 하나님을 인식하는 빗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자신이 죄와 어두움 가운데 있다고 여기지 않거나 하나님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은 구원 받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만날 방법은 없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 하나님을 인식하는 빛이 있는 삶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이 어두운 데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들 자신은 어둡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이런 것이다”라고 안주 삼아 말하는 사람들, 신학을 전공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은 하나님의 빛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 자신은 어둡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님 뜻을 찾는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빛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빛도 있고 밝으니 보이지 않을 리 없다. 또 빛이 있으니 삶이 좌충우돌할 리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고 삶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데 자신은 하나님의 세계와 나라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리고 빛이 있다면 최소한 자기 인생이 존재하게 된이유와 목적을 안다. 그것이 빛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의 목적도 모르고, 육신을 주신 이유도 모르면서 육신의 평안과 성공을 구하는 삶 속에 있다면 빛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혹은 다른 이유로 빛 가운데 있다 여기는 착각은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이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다.


It ain ' t what you don ' t know that gets you into trouble. It ' s what you know for sure that just ain ' t so.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영화 <빅쇼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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