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바벨탑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율법과 복음 Date : 2016. 10. 2. 16:25 Writer : 김홍덕

사람들이 성경을 보는데 이견들이 있는 것은 비단 삼겹살, 안식일, 십일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세례도 다릅니다. 장로와 목사에 대한 관점도 교파마다 다릅니다. 이렇듯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서 그 의미를 해석하는 관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그 다른 것을 옳다고 주장하는 것에 있습니다. 


사람마다 주장하는 것이 다를 수는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침례로 어떤 사람은 물적신 손으로 안수하는 세례면 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래야만 해!>라고 주장하는 순간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 의를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데 당연이 옳은 것을 주장하고 관철시켜야지!!”라고 보통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반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온전한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오셨는데 왜 그 의를 주장하시지 않고 십자가에 불의하다는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셨는가?”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의를 말씀하셨을 때 다른 사람이 “그게 아니야!”라고 말할 때 죄인이 되셨는데, 지금 하나님을 믿는다는 많은 사람들은 “반드시 이래야 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장들이 충돌하여 교파가 갈라지고, 또 교회 안에서 말로 할 수 없는 다툼이 생기고 교회가 갈라서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는 사람들이 스스로 하늘에 오르려고 탑을 쌓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바벨 광야(땅)에 모여서 하늘에 오르려 탑을 쌓았습니다. 목적은 사람들이 흩어짐을 면하고 서로 하나가 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셨습니다. 아니 사람들이 하나님께 이르려고 그렇게 엄청난 공사를 목숨 걸고 하겠다는데 왜 그것이 그렇게도 못마땅하셨을까요?


하나님은 결국 사람들이 바벨탑을 다 쌓을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하십니다. 그 조치의 내용은 다름이 아니라 언어(말)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말을 알아들을 수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단순하게 영어, 불어, 독어, 한국어와 같이 언어 체계를 달리 하신 것이라고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은 같은 언어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에 늘 하는 말 “말이 안 통하네?”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언어가 다르면 의사소통이 힘들지만 어지간하면 바디랭귀지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 못 알아듣는 것은 도리가 없습니다. 세례와 침례 서로가 옳다는 주장을 어느 한쪽이 알아들었다면 아마 세례 의식은 지금 통일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통일되지 않았다는 것은 서로 말을 못 알아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아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의에 동의하는 것, 곧 네가 옳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굽혀지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의에 져서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지셨는데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 섬기는 방법에 대하여 서로 굽히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언어가 달라진 것의 본질이고, 같은 성경을 보고 그 지키는 것이 각양각색이 된 이유인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지는 것이 죽고자 하는 자가 살 것이라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바로 이렇듯 성경을 볼 때 ‘이것이 옳은 것이야!’라고 주장하는 것, 여기가 율법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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