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사, 십자가로 드린 희생의 제사는 참 것이고, 다시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말씀 중에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시지 않고 참 하늘에 들어갔다는 말씀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 9:24)


이것은 다분히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신 것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땅의 모든 것은 하늘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변하면 땅이 변하는 것도 그렇고, 하늘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으니 이 땅에도 교회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이 하늘은 물리적, 천체 물리학적 하늘이 아니다. 이것은 의와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제사를 드리고 <참>하늘에 속했다는 말에 의미가 무색해진다. 파란 하늘이 참 된 것이라는 것인데 우주를 놓고 보면 남반구에서 보는 우주와 북반구에서 보는 우주는 만날 수조차 없다.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다고 할 것인가? 또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사람들이 그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육안으로 인지할 수 있는 속도로 하늘로 갔다면 얼마나 가야 하늘나라가 되는지 누구도 설명할 수 없다. 보이저 1,2호가 해왕성 밖으로 가는데 수십년이 걸렸는데 예수님은 2천년전에 올라가셨으니 어디쯤 가고 계신지 설명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하늘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늘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하늘은 의와 뜻이다. 형식인 모든 세상의 내용이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하늘이다. 우주 공간이 아니다. 의와 뜻이 있는 곳이 하늘이다. 예수님께서 참 하늘로 들어가셨다는 것은 온전한 하나님의 의 안으로 들어가셨다는 말씀이다. 십자가에서 보이시니 것이 온전한 하나님의 의와 뜻이니 그것으로 하늘에 속한 것이다. 의와 뜻이 있는 어떤 공간에 들어가셨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희생이 바로 참 하늘에 속한 것이라는 것이다. 사과가 마트에 있든 시장에 있든 다 사과 안에 있는 것과 같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가셨다는 것은 예수님은 온전한 하나님의 의 안에 계신 분이라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심으로 인하여 성령이 오셨다. 이것은 바통 터치가 아니다. 결혼하여 동침함과 잉태되는 것은 분리된 사건이 아닌 것처럼 하나의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들어가셨다는 것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 구속의 본질을 드러낸 사건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의와 뜻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고속도로변에 있는 광고판처럼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인지하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난 것이다. 광야에 들린 놋뱀도 본 사람만 나은 것과 같은 이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을 본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었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본 사람은 백부장 뿐이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들어가셨다는 것이 참 것으로 들어 간 것으로 인지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인하여 하나님의 참 된 제사와 뜻을 보게 되었다. 그것이 보이는 사람은 성령이 잉테케 하신다. 예수님이 드린 십자가의 희생이 온전하게 드러나는 순간이고 사람이다.


히브리서에서 제사를 언급하고, 멜기세덱을 소환하여 온전한 제사, 참 된 것을 설명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루신 구속의 역사의 온전함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레위 계통의 제사와 비교를 한다. 레위 계통의 제사는 반복적이며, 다양하고, 많은 제사장이 필요한 반면 예수님의 제사는 단번에 드리는 것으로 충분하고, 유일하며, 예수님 한 분으로 족한 제사임을 설명한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내용이고 본질이며, 율법과 레위 계통의 제사는 그 내용이 나타난 하나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보이신 것은 참 것이고 형식으로 드리는 제사는 모형이고 참된 하늘의 것의 그림자다. 이것이 “과연 그렇구나!”라고 발견되는 것은 정말로 큰 은혜다.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세상에서 하는 공부도 그 이치를 깨달으면 놀라운데 인생의 존재 목적을 알고 그것이 참된 것이며, 하늘에 속한 것임을 아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것이 이때까지 모든 가치의 근원이라 생각했던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갈 수 있는 낮은 자리로 가는 것임을 알 때 더 놀란다. 참된 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고, 누구에게나 쉽고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너 옳다”라고 하는 그 하나가 바로 참된 희생이고 제사다. 그런 삶이 하나님께서 나타내시고자 하는 참 것, 곧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고자 하시는 그의 뜻과 의로움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