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제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새로운 법을 주셨다는 말씀은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이것은 우리들의 신앙 전반에 깔려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신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도 성경에 여러 번 말씀하셨다. 히브리서 8장에도 나온다.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찌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새우리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연약과 같지 아니하도다(히 8:8-9상)


성경을 읽고 볼 때 이런 사소한 의문을 가지면 빨리 성경을 알 수 있다. 조건이 있다면 의문이 되는 괴리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특히 하나님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두고 문제에 접근하면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늘 교정할 수 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히 언제나 동일하시다고 했는데 새로운 언약을 주신다고 하시는 것이 이상하지 않으면 한 마디로 새 언약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새 것에 관심이 없으니 지금 것에 만족하고 있고, 또 누가 새것이 있다고 해도 갈등하시 않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세운 언약을 스스로 번복하시나는 말씀은 당연히 이상해야 한다. 특히 사람인 나에게 하시는 말씀인데 하나님의 법이 바뀌었다면 재빨리 그 법에 적용을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는 분이라는 점이다. 그러면 여기서 기준은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는 분이라는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언약을 번복하는 것은 나타난 것이고, 변치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본성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본성이지만 어떨 때는 혼내고 어떨 때는 모든 것을 내어 주는 것이 그렇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새 언약을 말씀하셨을까? 그것은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다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게 되면 사람에게는 새로운 법이다. 이것은 궤변이 아니다. 육신으로 나서 세상을 자기 좋을 대로 살다가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세계, 태초가 열리는 것이다. 그렇게 거듭난 사람이 되면 자신이 하나님의 법을 알고 하나님의 태초가 열리기 전이나 열린 다음이나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셨는데 나 자신이 새로운 법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안다. (사실 이런 고백과 경험이 없다면 거듭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다.)


히브리서 중반에 제사에 관하여 특히 예수님께서 온전한 대제사장이 되심을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하여 제사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달라진 것은 하나님께서 제사에 대하여 생각하신 것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달라진 것은 내용 없이 형식만 하나님께 드려지던 제사가 내용이 온전해진 제사가 된 것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그 심령에 순종하므로 그 사람의 삶이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삶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렇게 되려면 사람이 자기 삶을 하나님께서 주관하도록 자신을 내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제사의 본질이다. 그런데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과 그들의 제사는 그 본질이 아니라 형식만 준수하므로 하나님께 드릴 제사에 대한 책무를 다했다고 여기는 제사다. 행위로 하나님의 뜻을 다한 것으로 여기는 면죄부 비슷한 것이다.


그런 제사가 온전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육신을 가진 삶이 하나님께 어떻게 드려져야 하는지를 십자가에서 보이셨다. 육신을 죽음에 내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로 가신 과정과 의미가 핵심이다. 사람이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주장을 실현하는 것에 나 육신의 수고를 내어주는 것임이 보이셨다. 


그것이 십자가의 핵심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자기 옳다는 것에 내 육신의 수고를 내어 주는 것, 하나님은 나의 삶을 그것에 쓰시겠다고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는 제사는 다음이 아니라 나의 삶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지, 소나 양을 잡고 시대가 바뀌었으니 소나 양 대신 돈을 내는 것이 온전한 제사가 아님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오셔서 율법과 그 안에 있는 제사의 본질을 보이셨다. 그로 인하여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그의 보내신 뜻이 모든 사람이 의인이신 예수님께서 악인을 위하여 악인들의 주장에 따라 십자가를 지는 것에 자신을 내어주는 것임을 보고 자기 삶의 존재 목적과 정체성이 그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나와 그들의 삶이 온전한 제사가 되었다. 


그들에게 새로운 언약과 율법이 완성된 것이다. 형식만 지키는 법에서 온전한 내용을 지키는 세계가 열린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새 언약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새 언약을 돌에 새긴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긴 것이라고 하신다. 심령에 하나님의 법이 있어 그 법이 그 사람의 삶을 주관하는 법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새 언약이 열린 것이다.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의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 백성이 되라라(히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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