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사망과 죽음에서 우리를 구속하신 분이시다. 이 구속은 일반적인 기독교인들이 가진 생각과 같이 사람들이 무서워하니 사람들 대신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구속하신 것이 아니다. 버스 차비 대신 내어주는 것 같은 구속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구속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그 죽음과 사망이 세상의 견해와는 달리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본질이라는 것을 직접 보이시므로 그것을 본 사람들이 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영광스러운 것임을 알도록 직접 그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구속인 것이다.


히브리서는 또 성경이 말씀하시는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죽음은 육신의 목숨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는 것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 옳다는 주장 앞에 자신을 내어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경영하시는 하나님 말씀의 본체이자 아들이시니 세상에서 더 의로울 수 없는 존재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정립한 하나님 아들의 모습이 아니라면 십자가에 달아버린 주장에 자신을 제물로 내어 주신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무너지는 것을 몸소 보이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진정한 아들의 모습이고, 기뻐하는 것이며, 모든 사람은 그 예수님의 모습을 인생의 정체성과 목적으로 받으라고 하신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이 오히려 하나님께서 아들로 여기시는 모습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육신 가진 인생을 통하여 나타내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성품은 스스로 옳다는 것을 버릴 때 나타나는 것임을 보이신 것이다. 그것 이상 낮아지는 것이 없고, 그것 이상의 사랑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의요, 하나님 아들임을 보이심으로 그것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서 그것을 알게 되도록 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구속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 구속은 자신이 스스로 의를 선택하고 주장하고 고집할 수 있는 세상의 유일한 존재인 사람에 대한 구속인 것이다. 스스로 의를 선택하지 않고 본능을 좇아 사는 동물에게도 해당되지 않는 구속이며, 자신의 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도구로 나타나는 천사 역시 예수님 구속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사람, 하나님이 주신 육신을 자신의 순종하는 의에 사용하는 유일한 사람을 구속하려 하심이다.


그러나 이 구속이 유효하게 되는, 그러니까 예수님의 구속을 받는 것은 사람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생과 같이 육신을 가지고 오셔서 육신을 가진 모든 인생을 구속하려 십자가를 지셨으나, 그 구속을 받는 사람은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아니 그 구속을 자신의 것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는 모든 인생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은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것이다.


예수님의 구속은 이렇게 우리가 가진 문제에 대한 답을 직접 보여주시는 구속이다. 죄는 사람이, 벌은 예수님이 받는 그런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나서 지은 죄는 어떻게 하느냐를 궁금해하고, 구원을 받았는데 또 죄를 범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하는 것은 죄는 행위로 범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예수님의 구속은 사람이 행위로 범한 죄에 대한 벌을 대신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니 시간차 범죄에 대하여 궁금해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형제와 같이 되심이 마땅하다고 하심(히 2:17)도 예수님의 구속은 우리가 가진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동일한 육신으로 답을 보이셨기 때문에 그 구속을 보고 하나님의 의를 회복하여 하나님이 같은 아버지인 생명이 된 형제라 칭함 받는 모든 사람과 같이 되심은 너무 마땅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존재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우리는 예수님과 다르니 노력할 뿐’이라는 신앙이 얼마나 구원과 멀고 예수님의 구속을 저 버린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과 우리가 동일한 생명을 가졌고, 예수님께서 보이신 대로 우리도 같이 갈 수 없다면 구속도 없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수도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이 하나님의 의로 거듭나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의 앞에 육신을 내어주는 것이 인간이 존재 목적임을 보이시는 구원의 길을 보이셨는데 육신을 보전하고 평안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며 하나님께 영광이라 여기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방법도 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닐 뿐더러 예수님의 구속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죄를 또 범하는 것이기에 십자가를 욕되게 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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