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3:18-25) 마지막 인사-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히브리서 Date : 2020. 5. 22. 04:00 Writer : 김홍덕


질그릇의 선택
국내도서
저자 : 김홍덕
출판 : 바른북스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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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복음을 전하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를 당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와 같은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저자와 함께 한 사람들이 모든 일에 선한 행동을 하려 하니 속심령에 선한 양심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를 정리해보면 먼저 히브리서를 기록한 저자와 함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볼 때 자신들이 늘 그리고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들을 보니 자기들 안에 선한 양심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여기서 말하는 ‘선함’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쉽게 도덕적이고 선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숙자에게 밥을 퍼주고, 기부하고, 교통법규 잘 지키고, 사람에게 선한 말을 하며, 화가 나도 잘 참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예수님을 “선한 선생”이라 부른 사람이 가진 “선”의 개념이지 이 히브리서가 말씀하시는 선이 아니다.


정말로 히브리서가 말씀하는 선함이 그것이라면 13장에 이르는 긴 서신 속에 그것이 정말 많이 내포되어 있어야 하지만 그런 논제의 내용은 13장 시작 부분에 얼마 정도일 뿐 전반적인 주제는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희생이 우리에게 온전한 구속임을 믿고 그에게 나아가자는 것이 히브리서의 주제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선함은 그 주제와 맥락을 같이해야 한다. 긴 편지를 그리스도에 대하여 권면하다가 갑자기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덕적이고 선량한 행동이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선함은 세상의 가치, 행위의 선을 규정하는 규범이나 기준이 아니다. 이 선함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오직 하나님만 선하다고 하신 말씀 속의 선(善), 그것이다. 따라서 히브리서를 기록한 사도와 그가 우리라고 설명한 함께한 사람들 심령에 있는 선함의 기준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준이다. 하나님이 선의 기준이라는 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 하나님이 가지신 선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당연히 목적에 뿌리를 둔다. 이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도 만들거나 구매한 물건이 의도하고 목적한 대로 작동되면 선하다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버리거나 고친다. 버리거나 고친다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 곧 악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사람도 세상도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 안에 있으면 선하고 그렇지 않으면 악한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하나님만이 선하다고 하신 것이다.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니 이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있어 선과 악은 하나님만이 정의를 내리실 수 있다는 말씀이다.


히브리서를 기록한 저자와 또 함께한 사람들의 속심령에 선한 양심이 있고 그것이 선한 행동을 자아낸다는 것은 속심령에 하나님께서 선으로 여기시는 것이 있고 그것이 자기 육신의 행동과 삶을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끌고 있으며 자신들은 바로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의미다. 특별히 속심령에 선한 양심이 있음을 확신한다고 표현했다는 것은 자기 의도와 무관하게 속에 있는 선함이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듭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확인하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은 그냥 속심령이 이끄는 대로 살 뿐인데 성경을 보니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함을 알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이끄는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그 노력이 부족하다고 겸허한 척 회개하며 다시 노력하는 일반적인 신앙과는 그 세계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따라서 노력하는 신앙은 선한 행함도, 선한 양심도 아니라는 확증이기도 하다.


히브리서 마지막 인사에 나오는 선한 양심에 관한 말씀은 이렇듯 두 가지 측면에서 깊은 묵상을 요구한다. 하나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선함”은 히브리서 전반에 녹아 있는 예수님의 희생, 하나님은 아들로 말씀하신다는 기반 위에서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보이신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 선함이라는 것이고, 다음으로 이 선함은 거듭남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에서 인지할 수 있듯 생명에 관한 것이고, 이 선함은 생명이 그 본성대로 살아가듯 속심령에 거하면 그것이 선한 행동으로 이끌어 낸다는 점을 저자가 자신의 삶으로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