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의 선택
국내도서
저자 : 김홍덕
출판 : 바른북스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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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드리는 찬미의 제사는 좋은 음향 장비를 가지고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찬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단지 입술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다. 여기에 ‘율동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로 대책 없는 사람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찬양의 개념에는 맹점이 있다. 그것은 크고 위대한 것은 누구나 다 찬양한다는 것이다. 가령 나라의 대통령을 정말로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그 앞에서는 예의를 갖추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자신이 바라는 육신의 삶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신으로 알기에 그 앞에서 삐끗하면 화가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특별한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지금 히브리서의 말씀만 봐도 그렇다. 예수님의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가서 고난을 함께 하는 것이 찬미의 제사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분명하게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명하신 대로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것임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성경을 자기 편리한대로 보는 것이다.


예수님의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찬미하는 제사라고 한 것은 예수님의 고난이 내 삶의 본질이고 정체성이라는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신학이 아니라 그냥 국어다. 그리고 이것은 입술의 열매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이 제사와 함께 있을 때 온전하다는 뜻이다.


나무로 말하자면 나무가 가진 특성이 입술의 말이다. 생김새와 여러가지 특성들이 자신이 어떤 나무인지를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참되고 선한 것이 되려면 그 특성에 맞는 열매가 있어야 한다. 생긴 것은 사과나무인데 사과가 열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냥 불쏘시개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살아있으면 땅의 지력을 낭비하는 꼴이다. 히브리서가 말씀하시는 ‘입술의 열매’가 바로 이것이다.


히브리서 권면들의 대상과 그와 같은 위치에 있는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하고, 요즘 말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예수님의 능욕을 지고 영문 밖과 같은 세상의 가치 앞에 자신을 내어주는 삶이라는 찬미의 제사를 드릴 때 온전해진다는 말씀이다.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나를 조성하신 하나님께서 쓰시겠다는 것에 순종함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쓰실 것인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보이셨다. 그러면 우리도 그와 같이 십자가를 지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 중에서 찬미의 성격과 방향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처음 설명한 것과 같이 하나님을 높은 곳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으로 알고 찬양하는 것이나, 특히 하나님을 육신의 평안과 세상의 성공을 주관하시는 신으로 섬기며 찬양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이고 성격도 하늘과 땅의 차이다.


높은 것을 바라며 높이 있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지는 인생 가장 밑바닥으로 가는 삶을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그 격이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 둘 중에 하나님이 열매로 여기시는 것은 예수님의 능욕을 지고 세상의 가치 앞에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찬미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히브리서와 성경의 말씀이다.


이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 이것은 단순한 역설이 아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보이신 우리 삶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고 이렇게 히브리서와 이 글을 읽는 이들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예수님께서 보이신 것이 우리 찬미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행동으로 지은 죄를 사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대신 벌을 받았다고 믿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이긴 자가 되게 하신다는 것을 찬미의 주제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열매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열매, 그 처음이 바로 예수님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다음의 모든 열매도 예수님과 같아야 한다. 세상의 가치로 죄인, 그것도 가장 낮은 사형수가 되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예수님을 심판한 세상의 가치로 이긴 자가 되는 것을 바라고, 하나님과 예수님은 그것을 이긴 분이라 찬미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열매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한다면 많은 것을 바꾸어야 한다. 이전과 다른 생각으로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천지의 주제인 하나님을 믿고, 그를 믿으니 나는 아들이 되었다.  그러니 나는 세상에서 이긴 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떠나야 한다.


세상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믿는 나의 말을 듣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주장대로 내 몸을 움직이고, 그들이 뜻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열매다. 


많은 신앙인들이, 특히 성경에 대하여 남다른 깊이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일수록 이것에서 늘 실족한다. 더 귀한 것을 알았으니 더 귀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귀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나를 영문 밖 천한 곳으로 내어주는 놀라운 비밀의 말씀이다. 이것이 보여야 진정으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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