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3:1-19) 하박국의 찬양 (3)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하박국 Date : 2021. 3. 9. 10:03 Writer : 김홍덕

(하박국 마지막 글)

 

비단 하박국만 아니라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오늘 나의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면 구구단보다 못하다. 무화과나 포도나무와 같은 말들의 의미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결국 그 모든 표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을 말씀하시는 도구와 과정이다. 그렇게 다양하게 말씀하시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의가 성경을 읽고 듣는 사람의 심령에 심겨서 하나님의 의가 생명이 되고 그 생명이 주는 본성대로 인생을 사는 것이 성경을 주신 이유이자 우리 인생의 목적이다.

 

따라서 하박국의 말씀 역시 어느 시대를 사는 사람에게든 세상에 악이 관영함에 대한 한탄이나 의문을 가진 상태에서 세상이 존재의 하나님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인생과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실 세상이 악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 그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경영하신다는 하나님께 세상의 악함을 해결해 달라 기도한다. 그런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이래로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그 기도를 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이 세상은 여전하다. 아직도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박국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다.

 

그러나 하박국은 달랐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세상이 어떠하든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세상이 왜 악한지, 왜 이방인을 들어서 세상의 악을 심판하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신 것도 아니다. 하박국에게 하신 말씀은 개괄적으로 보면 다른 선지서에 있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만한 자, 무고히 피 흘리는 자, 강포한 자와 같은 악한 자를 심판하시겠다는 말씀 그것뿐이다. 한 마디로 성경 전체의 주제에 입각한 말씀들이었다.

 

그런데 하박국은 늘 하시는 똑같아 보이는 말씀을 듣고 세상이 왜 악한지와 또 왜 악한 자가 세상을 심판하는지에 대하여 더 이상 의문스럽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와 뜻과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자기가 옳다는 길을 좇아 살아가지만 자신은 오직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할 것이라고 한다. 하박국이 이 모습이 오늘 나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하박국서를 제대로 읽은 것이다.

 

하박국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할 것이라고 고백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자신에게 아멘이 되었다는 의미다. 그것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요나와 같이 끝까지 불만을 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하박국과 달리 하박국서 뿐 아니라 성경의 어떤 말씀을 읽어도 아직도 세상이 악하다고 말한다. 단순히 읽을 뿐 아니라 성경을 연구하고 그것으로 지위를 만들고 그 지위를 입고서 직업으로 살아가는 자칭 성경의 전문가들조차 강단에서 늘 세상이 악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하박국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한 깨달음이 없는 것이고 돌아서지 않는 것이며 기쁨을 얻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하박국과 오늘날 신앙인들의 차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이 되고 의문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가 자기 안에도 있는 사람이다. 일명 말이 통한다고 하는 것은 서로 가치관이나 의가 같다는 의미다.(그 반대가 바벨탑을 쌓을 때 말이 달라진 것이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 의도하심이 자기 안에서 생명이 되었다. 하나님과 말이 통한 것이다. 자기 안에 하나님과 같은 안목과 가치관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의가 있었기 때문에 손뼉이 마주치듯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서 순종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인하여 의문이 없어지고 기쁨이 넘친다는 것은 하나님과 의와 생명이 같은 사람이라는 증거다.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것이자 그리스도라는 생명이 자기 본성이 되었다는 의미다. 그런 사람을 성경을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게 그리스도이자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구원의 본질이다.

 

정리해보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들어가서 보면 이 세상이 참 악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이 왜 해결이 되지 않는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우리의 생각을 선지자 하박국이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뿐 아니라 하박국은 그런 문제가 해결된 고백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그의 의문과 기쁨 사이에는 우리가 성경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그 일상적인 말씀들을 듣고 세상이 왜 악한지와 또 왜 이방을 들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지를 깨달았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의에 순종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에 순종되었다는 것은 무엇이 악인지, 이방인이 어떤 사람인지, 또 심판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하나님과 생각이 같은 사람이란 의미다.

 

이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먼저는 하나님의 의이자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이 자기 생명 본성이 된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가 된 사람이므로 의에 대하여, 악에 대하여, 세상과 구원과 심판에 대하여 하나님과 같은 의와 생명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곧 구원이고 거듭난 사람이다. 즉 구원 받고 거듭난 사람은 세상이 의문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아직도 세상이 왜 악한지 의문스럽다면 하박국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약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문에서 시작해서 찬양으로 끝나는 하박국의 모습은 자기 생각에는 구원을 받았고, 또 교회에서 교리로 거듭났다고 세뇌 당해서 자신은 거듭났다고 여기지만 실상 실수도 않으시는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세상을 늘 악하게 여겨지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짧은 성경 하박국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악한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아니라 십자가와 세상의 모든 것으로 보이신 하나님의 의를 보고도 그것을 선택하여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 그들이 바라보고, 인식하고, 느끼며, 주장하는 그 세계가 악한 것이라는 것과, 그런 이들은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지 않았기에 혈통에 무관하게, 믿는 신앙과 종교와도 무관하게 이방인이라는 것이다. 설사 자신이 하나님을 부르고 믿고 있다고 해도, 그 하나님을 믿어서 세상의 가치로 높고 좋은 것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 또한 이방인이라는 것이 하나님과 하박국의 대화 속에 녹아 있다.

 

그런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면서 보이신 낮아지는 하나님의 성품을 좇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피라미드 위로 올라가려는 이방인이므로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좇음을 인하여 서로를 심판하게 된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심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의 행위에 대한 능동적인 조치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서 하나님과 다르고 반대된 자기 생각을 좇아 사는 그 자체로 스스로 악한 세상이 되고, 또 서로를 심판하며 산다. 이것이 하박국서가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 하박국서를 대하면서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라며 노래나 부르고 있을 것이 아니다. 하박국서를 읽고 들었는데 아직도 자신의 눈에 세상이 악하게 보인다거나, 오늘 자신의 기도가 예수님의 이름을 빌려 세상에서 이긴 자가 되려는 것이라면 자신은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셔도 깨달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것을 발견하고 시인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그런 만남은 자기 세상의 평안과 여호와 하나님을 인한 기쁨으로 사는 삶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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