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3:1-19) 하박국의 찬양 (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하박국 Date : 2021. 3. 8. 10:59 Writer : 김홍덕

하박국 선지자도 하나님과 대화를 시작할 즈음에는 이러한 모든 것을 아는 상태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 세상이 왜 이리 악한지?’왜 이방인을 들어서 세상을 심판하시는지의문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하박국의 마지막 부분에 오면 그런 태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3:17-18)

 

중요한 것은 하박국의 이런 변화를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유다. 당연히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심이다. 오늘 이 하박국서를 읽고 묵상하며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는 이들에게 세상에 대한 개념, 악한 세상에 대한 이해, 심판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바라심이다. 즉 오늘 우리에게 하박국의 이 찬양이 있는지, 하박국과 같은 찬양을 할 수밖에 없는 본성이 있는지를 반추해 보는 것이 하박국을 읽는 자세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하박국을 성경을 주신 이유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무화과는 율법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지킨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의 나무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를 저주하신 일을 생각해보면 무화과나무 잎이 말랐다는 것은 율법의 열매는 고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행위마저 없는 것이고, 이를 하박국이 처음 하나님께 한 질문과 연결해 보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모습조차 없는 세상이라도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겠다는 말이다.

(기뻐할 수 있는 본성을 가진 존재라면 찬양한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포도나무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포도나무라고 하신 나무다.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이 바로 포도나무다. 그러므로 포도열매가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의미다. 이 역시 하박국서를 시작할 때 하박국이 언급한 악한 세상의 한 단면이다.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성경 속 감람나무는 흔히들 말하는 올리브 나무다. 그 소출은 당연히 기름이다. 이는 그리스도와 연결된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의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그러므로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세울 기름이 없다는 의미고 이는 더 이상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의미다.

 

밭에 식물이 없으며

밭의 소산은 기본적으로 식재료지만 성경에서 밭의 소산은 제사를 드리는 제물이자 재료다. 성경 미가에서 메뚜기 재앙을 인하여 곡식이 소실되었다는 것이 곧 제사가 없어졌다는 의미로 쓰인 것과 연결된다. 즉 밭에서 식물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온전치 못하다는 것이 주된 의미다.

 

물론 식물은 사람의 생존에 관한 것이기에 사람의 굶주림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나의 양식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뜻(인생을 주신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하신 것에서 이것은 육신의 식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4:34)

 

또한 씨 뿌리는 비유에서 보듯이 성경에서 밭은 사람을 의미한다. 이는 사람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며, 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서 하나님께서 열매로 여기는 소산을 내어 놓아야 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밭과 같은 사람이 내어 놓아야 하는 온전한 소산은 말씀()과 육신(흙으로 지음 받은 육신인 밭)이 하나가 된 소출이다. 생물학적으로도 땅에서 나는 모든 소출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생명을 담은 씨와 땅의 성분이 하나가 된 것이다.

 

 

양과 소가 없을지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제물인 양과 소가 없다는 것은 완전히 제사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궁극적인 제물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는 우리 육신이 피를 흘려 하나님께 제물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육신 안에 거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것은 그 성품을 표현할 형식 곧 육신으로 영이신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보내셔서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께서 보이신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의지를 주셨다. 스스로 제물이 되는 것을 사람 손에 맡기신 것이다. 그래서 청지기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셔서 보이신 것을 사람이 선택하고, 자기 인생의 목적과 자신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하나님께 찾고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와 같이 자기 육신이 하나님의 형상과 성품을 표현하는 제물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몸을 산제사로 드리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그리고 예수님께서 바로 이러한 법을 몸소 보이셨기에 예수님이 어린 양이다. 예로부터 양이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진 이유다. 양이나 소와 같은 제물을 번제로 드릴 때 번제를 드리는 자가 그 머리에 안수한 것도 자신을 드린다는 의미며, 하나님께서 받으시고자 하시는 것은 결국 육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삶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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