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의 선택
국내도서
저자 : 김홍덕
출판 : 바른북스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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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과 악은 요철(凹凸)관계다. 심판은 악에 맞추어 심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당연히 하나님이 악으로 여기시는 것에 대한 심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심판은 속히 이르고 지체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2:3)

 

그런데 세상의 악인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은 고사하고 하나님의 실존도 인정하지 않는데도 잘 살아가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심판을 하시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은 언제나 심판은 늦지 않고 신속하게 이루어진다고 하셨지만 사람의 눈에 그렇게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세상은 악해지고만 있는데 이것은 또 무슨 이유인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의 기대와 다르고, 그런 면에서 보면 성경의 신뢰도마저 떨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에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악으로 보시는 것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생각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의문이다.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신속하다.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한 진정한 의문은 사실 왜 빨리 심판하지 않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이 성경에 여러 군데 있다는 것이다. 더 심한 것은 하나님은 심판을 아들에게 맡겼는데, 그 아들 예수님은 또 심판하지 않는다고까지 하신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5:22)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12:47)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마주하게 될 문제라는 점도 중요하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늘 신속하게 시행하신다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갈수록 악해져가는 문제를 가진 심판,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은 심판을 하시지 않는다는 상충되는 말씀까지 있는 심판이라는 명제가 오늘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이것에 대하여 분명하게 늘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하박국에게 하나님은 이 묵시(심판)에 대하여 명확하게 기록하여 사람이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하라고 하셨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2:2)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우리에게 강력하게 전달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 심판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당연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선 하나님의 심판은 악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나 징벌이 핵심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뜻을 보이시고 그것에 순종하고 거하며 속한 자들을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이끄시므로 그렇지 못한 자들이 상대적으로 심판에 속하게 되는 구조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는 아무도 심판하시지 않는다.’라고 하신 것과,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뜻이다. 아울러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므로 그 오신 뜻에 순종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구분되게 되었다는 의미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사람과 동일한 육신으로 보이신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존재, 예수님과 같은 생명 본성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눠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심판의 본질이자 신속성이다.

 

예수님을 보고 그 십자가를 보며 자신의 존재 정체성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라는 것을 순종하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실 때 그 말씀인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 자기 삶의 목적이자 행동의 본성이 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 심판의 본질이란 말이다.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경영하시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사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로 나누어졌다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경영하시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과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임은 물론이고,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세상에 하나님과 다른 의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마치 오른 나사(볼트)를 왼나사(너트)에 끼우는 것 같이 모든 것이 힘들고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므로 그 삶 자체가 곤고함뿐인 삶이 되니 그것이 바로 심판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서 보이신 사람에 대한 생각과 뜻, 그리고 사람에 대한 정체성에 순종하지 않는 그 순간 즉시 심판을 받은 것이다. 이것을 비유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죄를 지은 자를 추위에 내좇는 것이 아니라 추운데 있는 이들을 따뜻한 곳으로 불러들이지 않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더욱이 그 따뜻하고 안락한 곳은 잠기지도 않았고, 예수님이 오시므로 어떻게 들어가는지 밝히셨을 뿐 아니라, 그 짐은 사람들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에 비해 가볍다고까지 하셨는데 사람이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므로 스스로 들어오지 않으므로 심판을 자처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어 따뜻한 곳에 들어오는 쉬운 길을 보이셨음에도 인생에 대한 자기 생각을 고집하므로 그 은혜에 순종하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는 그 순간에서부터 바로 심판이고, 또 순종할 때까지 죄와 사망, 곧 심판 가운데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순종하고 자신도 예수님과 같은 존재로서 육신의 수고를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내어주는 십자가 지는 삶을 살지 않는 모든 순간이 심판 가운데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본능적인 표현들 속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사람이 인생을 곤고한 것이라 말하는 것이 그것이고, 죽어서라도 육신이 겪은 괴로움을 벗고자 하는 소망을 버리지 못함이 그것이다. 즉 살고 있는 그 자체를 고통과 고난 즉 심판 가운데 있다고 스스로 늘 고백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은 그렇게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심판 가운데 살면서 하나님이 온전하게 경영하시는 세상을 악하다고 생각한다.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과 같은 존재가 되라고 아들을 보내셨는데 사람은 스스로 자신은 예수님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다며 예수님과 같지 않으므로 인생이 곤고하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처럼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일으키며 살 수 없기에, 물 위를 걸을 수 없기에 인생은 힘들다고 여긴다. 그것이 바로 스스로 심판 가운데 있는 것이라는 증거다.

 

하지만 세상에는 육신의 삶이 평안한 사람도 많다. 사람들이 세상이 악하다고 여기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그 불평등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분명한 말씀을 하신다. 더 악한 이들을 일으켜 그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이 하박국의 말씀이다.(이것은 다음 편에 더 상세히 이야기 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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