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하나인 삶 (3)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내용과 형식 Date : 2015. 10. 16. 11:50 Writer : 김홍덕

생명처럼 자연스러운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삶



하나님을 생명의 주로 믿는 신앙에서 생명의 본성을 잊는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생명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람의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는 어떻게 해도 사람이고, 사람이 하는 짓을 하며, 개의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는 바다에 던져 놓아서 죽게 되어도 개일 뿐, 수영을 가르치고 바다에 던진다고 물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즉 생명이라는 것은 그 안에 그 생명 본성의 유전자, 곧 내용이 있으면 그 생명의 본성에 의한 모든 행동과 삶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이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 그 분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생명이 자기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삶이 된다는 것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하고 그것이 전부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어떤 가감이 있어서도 안 된다.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면 타락한 신앙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늘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이 뭔가를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믿을 찐데 사람 자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면서, 어떤 행동을 해야만 구원이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인을 도덕적으로 구속하여 도적적인 삶을 살게 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생명의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명의 법과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내용이고 사람의 삶은 형식이라는 표현을 강조하는 것은 신앙생활은 억지로 하거나, 안 하면 안 되는 규율과 같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앙, 신앙생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 자체로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행동을 절제하고 금욕하며 도덕적으로 자신을 엄히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 있으면 자연적으로 표현되는 것이지, 사람의 삶이라는 형식을 단련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말한 십자가의 삶을 사는 생명이 자기 안에 있는 사람의 삶이 그것을 보여준다. 마음에 분이 나지만 화를 내면 하나님께서 죄를 짓는 것이니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는 것과, 십자가의 도가 자기 안에 있어 그것이 생명이 되어 화가 날 이유가 사람 안에 없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화를 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십자가의 도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는 가치 기준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 되는 것을 수용하고 오히려 자신을 화나게 하는 사람이 그런 일이 화낼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수고하는 삶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속에 밖으로 표현되는데 어떻게 화를 내겠는가?



(화내는 일에 관하여 언급해 본다면…)

그렇다고 십자가의 도를 가진 이는 화도 안 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도 화를 내신다. 즉 어떤 일에 화를 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냥 사람들이 세상의 본질이 먹고 사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므로 그러한 일에 대한 손해를 보기 싫어 다투는 과정에서 화가 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화를 내는 본성을 두신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십자가의 도가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잘 통제하지 못하여 화를 내는 것이 죄라고 가르치거나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는 충분히 화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보여주신 십자가의 도, 인생의 존재 목적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런 일에는 화를 내신 것이다.



모든 신앙의 패러다임은 사람 자체로는 되지 않으니 그 형식인 삶의 행동양식을 교회 안에서 바꾸어내는 것에서 사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생명 있는 말씀이 사람 안에 심기도록 전하는 것이 신앙을 전하는 공동체, 복음을 전하고 공유하며 나누는 공동체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신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것은 사과는 사과 씨를 심어야 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온전한 생명이 있는 말씀을 들으면 사람 안에서 그 삶을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바꾸어내는 생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러라고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말씀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연약하다’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교회도 별다른 것 할 이유가 없다. 전도대회니 부흥회니 사람을 들들 볶을 필요가 없다. 그냥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면 그 말씀이 사람 안에서 생명이 되어 말려도 기도하고, 전도야 그 사람의 사는 모습을 보고 사람이 붙을 것이고, 봉사도 십자가의 도가 섬기는 것이니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여러 가지 행사를 꾸민다는 것은 말씀에 생명이 없다는 것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속에 내용이 없으니 형식으로라도 티를 내려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생화대신 조화? 그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내용이 그 사람의 삶을 주관하는 것이다. 사람의 삶은 아무렇게나 주관을 받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스스로가 그것이 목적이고 그것에 의미가 있다고 하면 그렇게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한다고 해도 억지로 하는 티가 나고 힘들다. 신앙이 힘들다면 억지로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 안에 하나님의 의와 말씀이 생명이 되어 씨앗과 흙이 하나가 되어 나무가 되듯 하나가 되면, 나무가 그 씨앗의 이름의 열매를 맺듯이 그리스도의 열매, 성령의 열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하나가 된 삶이다. 이것은 억지고 하거나, 사람의 행동을 단속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그 생명의 본성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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