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부활 (5)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치유 Date : 2013. 5. 20. 13:55 Writer : 김홍덕

이것은 그 사람의 말과 설교를 들을 때가 아니라, 십자가 밑의 백부장과 같이 그 사람을 볼 때 보는 사람이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큰 교회들의 목사들이 하는 설교를 듣고서 하나님이 누군지 지식적으로 알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보면서 저것이 그리스도의 삶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이는 잘 없다. 더욱이 그 목사를 보니 나도 그렇게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이는 더더욱 만나기 힘들다. 왜냐하면 보통사람은 신학도 하지 않았고, 목사도 아니며, 그렇게 종교적으로 고상한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목사는 세례 요한과 같이 전하는 사람일수는 있어도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큰 교회의 큰 맹점이기도 한 것이다. 듣고 깨달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보고서 나도 그렇게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사람의 죄를 사하는 것은 행위로 지은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죄를 사하러 오신 분이 아니다. 행위에 관한 죄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그 기준도 그저 세상에서 온 것일 뿐이다. 


예수님께서 사하라고 하신 죄는 정체성의 죄인 것이다. 즉 존재가 자리를 벗어난 것에서 구원하는 것을 말씀하심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또 부활하심으로 보여주신 우리의 정체성이 그것이고, 사하여 주신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그 가치관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의 죄를 사하여 준다는 것은, 나를 볼 때 보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두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 죄를 사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부활 생명을 가진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이다. 


계란이나 까 먹으면서 형식적으로 부활절이나 지키라고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되는데 너는 되지 않는 것을 주장하면 뜻이 전달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 의미가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이 그 정체성을 깨달아 그것으로 살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큰 교회의 목사와 같이 신학에다 각종 종교적 이력으로 가득한 사람은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 목사에게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신분이 아닌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약 올리는 것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의미 없는 존재는 부활 생명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주 천한 신분으로 오셔서 발가벗겨진 죄인으로 죽으신 것이다. 그건 누구나 될 수 있는 자리이고, 의에 관해서는 누구나 다 그렇기 때문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로마 황제로 보낼 수 없어서 말구유에 나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 황제로 오면 세상에서는 늘 한 사람만 구원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


부활이란 것은 놀라운 것이다. 죽임이라는 절대적 운명을 짊어진 사람에게 있어 죽고 난 다음에 다시 산다는 것은 벅찬 일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다시 산다고 했을 때, 다시 사는 삶은 분명히 그 이전의 삶과는 달라야 한다. 그래야 다시 사는 것이다. 


다시 살아났는데 이전과 같은 모양으로 산다면 그것은 삶에 마디가 하나 생긴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죽기 전에는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부유할수록 의롭고, 신분이 높을수록 권위가 있고, 고상할수록 대접받는다고 여기며 살고, 그것을 추구하다가, 


그 법 앞에서 죄인이 되어 죽게 되면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셔서 새 삶이 주어졌을 때는 이전에 가졌던 가치관은 버리고 사람이 가진 연약함을 인정하고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을 악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습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함으로 사람 앞에서 겸손하고, 또 다른 사람도 나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이 그 연약함으로 인하여 표현하는 각양의 까칠한 모습을 사랑하고 용납하는 삶을 살게 되는 부활한 삶이 되는 것이고, 또 그렇듯 자신이 위대해지려고도, 고상해지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용납해가는 모습을 보는 사람이 또한 그와 같이 되고 싶고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삶이 바로 부활의 삶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이유고 교훈이며, 모든 기적과 모든 치유를 우리 앞에 보이신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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