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4)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내용과 형식 Date : 2015. 10. 19. 13:55 Writer : 김홍덕

교회



이 글의 기본 주제는 <내용과 형식>이다. 이것은 성경의 일반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성경의 기본 구조를 보편적인 용어로 설명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성경의 기본 골격이고 법칙이기도 하다. 영이신 하나님과 그 영이신 하나님을 표현할 형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창조의 섭리가 그것이다. 사람에게 있어 사람의 내용, 곧 본질은 하나님의 의다. 그 하나님의 의는 사람에게 있어 사람의 존재 목적과 의미이다. 성경은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고 표현했다. 여기서 형상은 이미지다. 즉 사람은 사람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누군가 자신을 볼 때, 혹은 그 삶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그 사람에게서 이루어졌으므로 그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산 사람이다. 그것을 성경은 구원, 거듭남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살았다고 하는 생명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즉 세상의 모든 만물이 모두 하나님의 의와 성품을 표현하시기 위하여 지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이 하나님의 성품이 표현된 것이라는 것이 자기 안에서 깨달아진 사람은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이루어진 사람이고 그렇지 않다면 물리적 세상을 아무리 잘 알아도 하나님의 세상이 그 사람에게 열리지 않은 것이다. 즉 흑암과 혼돈 가운에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이 자기 안에서 열리지 않으면 인생을 왜 사는지 모르기 때문에 흑암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보면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의 그림자다. 즉 이 세상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그렇게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 세상이 하나님의 의가 표현된 것이라는 것이 열린 사람, 즉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태초가 있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하나님의 세계이다. 그런 사람에게만 이 세상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의지나 신념으로 의심을 물리치고 믿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듯 <하나님의 의는 사람의 내용 – 육신을 가진 삶은 그 형식>이라는 구조와 같이 이 세상은 하나님의 의가 표현된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의를 가진 삶을 살던 사람들이 육신의 장막을 벗고서 들어가는 곳이라면,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곳이 바로 <교회>이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예표인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의를 삶으로 표현한 사람들이 모이는(들어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교회도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같은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라는 내용이 교회라는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 이전에 이 세상이라는 것이 전부 하나님의 의가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그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라는 내용이 이 땅에서 형식으로 표현된 곳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가장 먼저는 교회가 설립되는 과정부터 설명하고 있다. 즉 교회가 건물을 세우고, 세상의 법칙대로 시험 쳐서 설교 면허를 얻은 목사가 있고 난 다음에 성도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의미인 사람,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 하나님의 의라는 내용이 삶이라는 형식이 된 사람이 모임으로 교회가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렇게 모인 교회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라는 내용을 표현한 형식, 즉 하나님 나라의 예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는 너무 많은 성경의 말씀들이 있다. 먼저는 예수님께서도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다. 분명히 모인 다음에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 사람이란, 그냥 육신이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곧 하나님의 의가 자기 삶의 목적임을 아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그런 면에서 보면 성경에 사람이라고 나온다고 육신인 사람이 그것에 해당된다고 믿는 것은 난센스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삶, 곧 하나님의 의가 삶으로 표현되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 상식적인 이치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모이면 대한민국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교회는 그냥 사람이 모여서 예배드리면 모인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는 터미널과 같은 곳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생명을 가진 이들,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모인 곳이라는 것이다.


많은 교회가 문제를 일으키고, 사람들이 교회에서 안식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을 알지 못하고 방향을 거꾸로 해서 일단 모으면 교회가 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안식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일단 건물과 목사라는 설교 면허가 있으면 교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형식이 있으면 내용이 찰 것이라는 거꾸로 된 방향을 가진 것이다. 그것은 형식이 본질로 아는 가치관의 산물일 뿐 온전한 하나님의 법이 아니다.


교회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사람이 모일 때 이미 하나님의 의를 자기 삶의 목적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성령의 감동이 있어서 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감동하는 것은 세상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든지(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전도다.), 육신이 교회에 와서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삶을 보고서 감동하든지 간에 먼저는 사람 안에 하나님의 의를 자기 삶의 목적으로 삼기 위한 순종의 세계가 시작되어 모이는 곳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예표이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 나라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의로 통치되듯이, 하나님의 의가 육신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은 교회는 하나님의 의를 육신으로 표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법인 공동체인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이들의 공동체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당연히 몸이 머리에 순종하듯 그리스도의 의에 자기 삶이 순종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아주 자연스럽고 안식할 수 있는 곳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심판이 없듯이 교회에는 심판이 없다.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독사 굴에 어린이가 손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곳이듯, 교회는 하나님의 의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육신의 다양한 성향대로 마음껏 자신의 육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를 표현함에 있어 심판도 거리낌도 없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형식이고 예표며,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교회에 가는데 의무감이 있고, 또 가면 사람들의 눈치 보이고, 또 신앙 없다고 심판 받고 한다면 그곳은 온전한 교회가 아니다. 또한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고, 교회를 아름답게 지어 놓으면 사람이 온다고 하는 것 역시 온전한 교회가 아니다. 하물며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싸우는 교회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교회를 세상적인 방법으로 세우고 운영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보기 때문에 사람의 외모와 행동을 기준으로 심판하고,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중심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모든 행동이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이 나오는 것이라는 것 자체도 모르기에 하나님의 의가 온전한 삶의 내용으로 있어 그것을 삶의 형식으로 표현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할뿐더러 그런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교회가 사람을 심판하고 다투고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보며 쫓아다니는 것이다. 그러한 곳은 교회 노릇을 하는 곳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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