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우리는 낮과 밤을 하나님께서 같이 창조하심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생각할 때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부정하다 생각하는 것이 공존하는 상태를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심을 통하여 사람들이 모든 것을 동원하여 선하려고 살아가는 삶에 대한 재고를 던져 주셨다. 그리고 그 네째 날에 창조된 밤과 낮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해를 낮을 주관하는 빛으로 달을 밤을 주관하는 빛으로 두셨다고 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낮에는 태양이 비친다. 그리고 밤에는 달이 우리를 밝힌다. 달빛은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계시는 동안은 낮이라고 하셨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반사되는 빛이 아니라 태양과 같이 원래의 빛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분명히 하지만 예수님께서 빛이고 낮이신 것이 태양과 같은 물리적인 빛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세계에 대하여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빛이고, 밝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밝음을 말하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 밝음에 관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까지 많은 선지자와 사사들이 하나님 세계에 대한 밝음을 선포하였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시키듯 그것을 선포해 온 모든 세대가 다 달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시대적으로 구약과 신약을 나누는 것은 아니다. 서기 3,000년이 되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밝음이 자기 안에 없고, 성경의 문자나 선지자와 사도들의 밝음과 같은 달의 밝음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 밤에 있는 것과 같다.



 

 

이 네째 날의 창조의 말씀은 어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가 낮과 같이 자신의 삶을 밝게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의 빛이 밤의 달과 같이 다른 사람으로 부터 비쳐지는 것을 자신의 밝음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마치 달이 태양의 빛을 반사해서 빛을 발산하듯, 선지자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비춰내기는 하지만 자신이 빛 그 자체는 아닌 존재를 통해서 인생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사람들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반면에 자기 안에 확실히 밝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있는 사람은 속에서 생수가 흘러 넘침과 같이 자신이 작과 같이 밝음 가운데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낮과 같은 밝음을 가진 사람과 또한 밤에 달빛을 그 밝음으로 삼아 살아가는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런 상태를 고착화 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낮과 같은 밝음을 소망하고 그런 세계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서 그렇게 되도록 하시는 것이 이 창조과정의 목적이다. 왜냐하면 이 천지창조는 사람이 하나님을 안식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이기에, 모든 사람이 낮과 같이 되어지는 과정을 설명하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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