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기도문은 앞에서 포스팅 한 것과 같이,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경계하라고 하신 후에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이다. 외식이라는 것은 형식에 치중된 삶의 한 형태를 말하는 것이므로 형식에 치우치고 그것에 의를 두고 형식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며 그것이 하나님을 잘 신앙하는 것이라고 믿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외식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날 큰교회의 좌표가 어디인지 보인다.

 

이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정체성에 맞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창조하실 때 두신 그 뜻과 목적 안에서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에 대하여, 사람을 창조하실 때 두신 뜻과 목적과 의가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의 형편과 살아가면서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충족시켜주시기 위하여 가르치신 기도가 아니다. 그것은 비단 주기도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든 기도가 같은 맥락이다. 그렇기에 주기도문에 나오는 <일용할 양식>이라는 것이 육신의 떡이 아니라는 것은 아주 깊이 새기고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나오는 일용할 양식은 영어로는 Bread이다. 이것은 우리 성경에서는 “떡”으로 번역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수 없이 떡이라고 표현 하셨는데, 특히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로부터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다.(요 6장 31-35) 그러므로 우리가 아버지께 기도할 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하는 것은 육신의 빵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먹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인육을 먹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정체성이 나의 정체성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무엇을 먹느냐 하는 것은 어떤 존재이야 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먹는다는 것, 그것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같은 존재라는 이야기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왕이요 제자상이요 선지자인 그리스도 아니신가?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 앞에 예수님과 같이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진 존재가 되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양식으로 삼는다는 것이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양식으로 주옵소서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수님과 같은 그리스도의 신분과 본성으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인 것이다.

 

 

인생이 육신 가운데서 살아가다 보면 육신에 관한 먹을 것, 입을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인 품위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것과 또 때로 오락과 유희를 위하여 필요한 것들이 많고, 또한 자식과 부모와 같은 혈연이나 또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긍정적인 소망에 까지 참 다양한 욕구와 바램이 있겠으나, 궁극적으로 이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은 아니다. 그런 모든 것은 이미 천지를 창조하실 때 우리가 필요한대로 사용할 수 있게 이미 주신 것이며, 그 모든 우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는 아들의 삶은 그것을 자유옵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바라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세우신 뜻이 내 안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며, 그 뜻은 나로 하여금 예수님과 같은 그리스도의 삶을 살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된 자를 하나님께서 아들이라 하셨으니, 우리가 그리스도의 본성과 성품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것이 되므로, 그것이 바로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삶이 우리의 일용할 양식, 즉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의 양식이요, 우리의 정체성이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라 하심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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