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나라가 임하옵시며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주기도문 Date : 2013. 1. 23. 10:07 Writer : 김홍덕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되게 해 달라고 하시고는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당연히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나라가 될 것이다. 즉, 나라에는 다 <의(義)>가 있는데 그 의가 바로 하나님을 거룩히 여기는 의라는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어떤 행위의 공로나 소유를 드림이나 어떤 장소에 거한다거나 하는 것에 따라 그 사람을 판단하는 세계와는 분명히 거룩하게 구분되는 의를 가지신 분이시기에 그 하나님의 나라의 의 또한 그것과 같은 것이며, 바로 그런 나라가 임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은 하늘에서 어떤 나라가 땅에 내려온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하나님께 어떤 나라가 임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은 내게 어떤 나라가 임하도록 해 달라는 것이며, 그것은 내가 어떤 나라의 일원이 되도록 해 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나라는 당연히 하나님의 의가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소유와 공로의 모든 신들과 분명하고 거룩하게 구분되시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뜻이며, 내가 그 이름을 거룩히 여긴다는 것은 또한 내가 그 나라의 일원이 된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그래야 내가 속할 수 있게 될 것이 아닌가? 여기서 잠깐 큰 교회의 이야기를 또 한다면, 그들에게 있어 이 하나님의 나라를 찾을 나침판이 있기나 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반복될 이야기이기도 한 큰 교회의 신앙관은 목사를 청빙함에 있어, 그 목사는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여긴다는 신앙고백을 보고 청빙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공부를 얼마나 했느냐?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너는 할 수 없는 구원의 법을 가르치신 적이 없다. 또한 장로가 되려면 교회의 대소사를 많이 감당한 공로와 교회에 큰 일이 있을 때 재정적인 부담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또한 기준이 되고 임직식 때는 봉 잡은 듯 교회를 개조하는 헌금을 내야 될 수 있는 자리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교회가 인정하는 자리인 장로가 되려면 공로와 소유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과연 그런 가치관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하신 하나님의 이름의 정체성에 부합되는 신앙관인가 하는 것을 또 재기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나라, 내가 속하게 해 달라고 하는 나라는 바로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나라 곧, 교회가 그곳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져 있다. 구약이 오실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되었다면, 신약은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가? 신약성경은 구름타고 오시는 예수님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약속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종말론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달력으로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 다미선교회가 1992년 10월 28일에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말하면서 사회적인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방송국에서 기준시간인 10시였던가에 다미선교회에 가서 뉴스를 방송하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다미선교회의 사람들은 흰 옷을 입고서 기도하는 모습이 TV에 비쳐졌었다. 


그런데 더 재미난 것은 그 당시 그것을 주도했던 이초석 목사가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계적인 망신을 당했는데도 아직도 그 사람이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도 시한부적 종말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미선교회가 아닌 보통의 교회들이 그것에서 자유로운가? 그것 또한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심은 이미 교회가 재림하신 주님과 같은 것이라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중에서 예수님이 왕권을 가지고 다시 오는 것을 볼 자가 있다고 복음서에 말씀하셨다.(마 16:28, 막 9:1, 눅 9:27)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재림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누가 종말론적 신앙 안에서 볼 때 아직 우리에게도 오지 않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바로 교회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교회가 바로 다시 오신 주님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에서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심이니......(엡 3:9-10)”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이제 교회로 하여감 하나님의 모든 뜻을 나타내시겠다는 말씀이신 것이다. 또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심 또한 이 땅에 실존하는 그리스도가 이제 교회로 있다는 말씀이신 것이다. 


물론 예수님은 직접 육신이 볼 수 있는 형태로 다시 오실 것이다. 그 때는 실제로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예수님의 재림이라고 믿는 가치관 안에 있다는 것은 2,000년 전에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지금은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과 같이, 언제가 오실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실체도 있겠지만 그런 재림이 있는 것은 이미 교회로 오신 예수님의 재림을 확정하기 위함인 것이지 그것만이 재림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 시대를 사는 사람이 아니면 재림의 주님을 볼 것이라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수 없고, 제자들 중에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 또한 틀린 것이라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라 하심에서 우리는 왕권으로 오신다는 것은 어떤 나라를 이루시고 오신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 나라는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이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 나라는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이고, 그것이 이미 왔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를 통해서 그 하나님의 나라, 곧 교회가 임함으로 내가 교회 안에 거하는 자가 되는 것이 바로 내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다.


또한 나라의 의는 무엇을 옳다고 하는 것이며, 그 나라에서는 무엇이 선한지 악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그 나라의 의이기에,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는 어떤 법으로 다스려져야하는가 했을 때에, 하나님이 옳다 여기시는 것을 그 통치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공로와 소유의 어떠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 즉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는 그런 죄인의 모습이 바로 자기의 모습이요 정체성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그것을 옳다 여기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것이 옳다 여김을 받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지, 학식 있고 돈 있고 교회에 많은 봉사를 한 사람을 인정하여 장로로 세우는 그런 법을 가진 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큰 교회의 의는 하나님을 소유의 하나님으로 또 행위에 보답하는 하나님으로 믿고 가르치기 때문에 그렇게 장로를 선출하는 것이다. 장로의 선출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한정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사람을 장로로 뽑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관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소유와 공로를 가치의 기준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그 교회가 그것을 의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이며,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리스도의 몸이요 주님이 왕권으로 오신 나라의 모습을 그런 모습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라 하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동일한 정체성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되는 것을, 곧 하나님의 의가 나의 의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의가 동일한 존재가 되기를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이며, 그것은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인 교회를 내게 허락하셔서 그 나라의 일원으로 살 수 있는 사람, 그런 자격이 있고, 그 나라의 의를, 그 교회의 의를 나의 의로 삼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또한 그런 사람이 모인 교회와 함께 살아가는 삶, 즉 나라에 속한 삶을 주시기를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또한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정체성이 아들의 정체성이 되는 것은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듯이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의가 다스리는 곳, 그 의가 모든 통치의 기본이요 법이 되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기에 교회는 늘 그러한 법으로 다스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나라가 임하옵시며’하심은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법과 뜻이 다스리는 나라인 교회에 대한 기도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법을 누리며 사는 공동체인 교회가 임하게 해달라고 하셨으니 그것은 기도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러한 공동체의 삶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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