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복음에 대한 글을 마치며…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율법과 복음 Date : 2016. 10. 30. 08:59 Writer : 김홍덕

율법은 엄연히 법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그 세계에 속한 사람은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키지 않거나 못하거나 범하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행함으로, 지켜야겠다는 의지나 신념으로 지킬 수 없습니다. 지킬 수 있다는 믿음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생명의 법입니다. 사람의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는 사람의 유전자가 가진 법이 있습니다. 그 법은 직립보행하게 하고, 말하게 하며, 생각하게 하고,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하는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끼리의 유전자가 가진 법은 거대한 덩치와 긴 코와 그 큰 덩치와 힘을 가졌음에도 풀을 먹게 하며 그 큰 힘으로 사냥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다 법입니다.


율법도 그런 법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생명의 법으로 인생 안에 있으면 십계명도 지키게 되고, 하나님의 의와 세상의 가치관이 구분되지 않은 것을 자기 것으로 취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굽이 갈라지지 않은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서 생명이 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목적하신 하나님의 형상이 표현되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존재가 되도록 창조나 일을 하시지 않기에 안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안식이 이루어진 존재, 어떤 날도 안식일과 같이 안식하는 안식일의 주인이 됩니다. 


또 그 사람은 온전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콜라가 담긴 콜라병은 콜라가 됩니다. 사람들이 콜라가 담긴 병을 보고, 콜라를 달라고 하고 그것을 들은 사람은 병을 주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 있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가 된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즉 그 사람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십일조를 합니다.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그것만 드리고 나머지는 내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증표로 그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하나님의 의가 생명이 되어 그 생명이 가진 법이 삶으로 표현되고 삶을 주관하므로 나타나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 어느 한 순간, 어떤 한 조문이라도 지키지 못한다면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고기가 물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물고기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일점일획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모두 지켜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 법리와 같이 생명으로 있어 그것이 표현된다면 율법은 어떻게 어길 수도 없고, 지키지 못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율법과 또 성경을 읽고서 그것을 지키려 하는데 안 된다면 그것은 자기 안에 그 율법의 법리와 생명의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를 깨닫는 것이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죄를 시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법이 자신을 주관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의로서 하나님의 법을 반대 방향에서 지켜서 의로워지려 했기에 아무리 해도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이 죄를 깨닫고 죄를 시인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르려 해 보니 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율법으로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은 자신이 지난 날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했는지, 그 자신의 방법이 틀린 것이고, 그것이 틀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뜻하신 것이 아닌 자기가 자기 삶을 주관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도 세상 사람들이 으 육신으로 수고하고 노력하여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올라가려는 애굽의 법으로 하나님의 법을 대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가 잘못된 안목 안에 있었다는 것을 시인하게 됩니다. 그것을 시인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반대 방향으로 하나님께 이르려했던, 하나님과 같이 되려 했던 마음을 돌이키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표현되는 법,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법에 자신이 속하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온전히 들어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고, 그 목적이 사람 안에 있으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기 정체성의 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것이 회개고 죄를 사함 받는 것이고 구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당연히 그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심겨서 성령으로 잉태되고 싹이 나서 거듭난 생명이 되어 그 생명의 법이 그 육신으로 표현되게 됩니다. 


그 상태가 바로 육신이 말씀이 된 상태고 그 말씀이 육신으로 표현되면 모든 율법이 완성되게 되고 안식일의 주인이 되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지키게 됩니다. 바로 그 상태, 그 존재가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상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이시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그리스도의 앞에서 말한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존재, 하나님의 말씀이 그 심령에서 생명이 되어 그 생명의 법으로 삶이 표현되는 상태가 되면 예수님의 오심이 그 사람에게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심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과 삶의 의미인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과 복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말씀에 대한 요약입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표현되시는 뜻과 방향과는 반대로 하나님을 믿어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하나님께서 내용이 되시고 내 삶은 그것을 표현하는 양식이 되는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이 되려했고, 영이신 하나님 같이 되려고 하니 이 육신은 너무 보잘 것 없고 연약하고 부끄러워 이것을 감추려고 육신의 행위로 이를 가리고 하나님께 이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생의 정체성, 육신을 가진 사람의 존재 목적과 이 삶의 의미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시면서, 그 보이신 삶이 율법의 완성이고, 하나님의 뜻과 우리 삶의 존재 목적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믿는다면 성경을 육신으로 지켜 의에 이르려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반대 방향에서 하나님과 같이 되려한 마음이 우리의 자리가 아님을 깨닫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도를 좇아 이 육신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산제사로 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하나님의 의에 나를 맡겨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순종이고 믿음입니다. 사람을 통하여 그 성품과 영광을 표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의 목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그것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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