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 - 선악과와 육신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질그릇의 선택 Date : 2020. 8. 30. 04:00 Writer : 김홍덕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 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만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타락했느냐?’의 문제가 있다. 아담의 타락을 예견하신 것인 지, 아니면 부추기셨는지, 선악과는 미끼였는지, 이런 문제들이 명확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한 아담은 왜 타락하고, 그로 인하여 아들을 보내야 했다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 들의 가치관으로 보면 아주 매끄러운 전개는 분명 아니다.


특히 이 의문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 상존하는 문제다. 누구도 매끄럽게 설명하지 못한다. 특히 예수님의 말씀을 행위로 지키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더 알 수 없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을 보는 초점이 그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행동이 불순종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의문이 해결되지 않는다. 행동은 나타난 것일 뿐 본질이 아닌데, 그것을 죄의 본질로 보는 이상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행동을 이해할 수는 없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알려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실 때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자 한 사람, 창조의 최종 목적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신 ‘모든 것을 다스릴 존재’인 하나님 창조의 최종 적인 목표 곧 하나님의 생각이 육신과 하나가 된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가 담긴 질그릇이며,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이며, 하나님의 생명이 육신으로 나타난 아들이며, 세상이 십자가로 끌고 가면 하나님 아들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 1:26)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자 하신 사람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육신이 아니라 육신으로 사는 동안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의가 자기 본성이 된 사람이 창조하시려고 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천지창조의 시작인 태초도 한 사람 개인이 하나님을 인식 하는 시작이듯 하나님께서 창조하고자 하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 곧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 창조하시고자 한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 창조는 육신 창조가 본질이 아니라 육신으로 난 사람을 그리스도로 나게 하시는 과정이다. 따라서 아직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육신이 창조된 것은 맞지만 하나 님의 창조목적이 달성된 존재는 아니라 혼돈하고 흑암이 짙은 땅일 뿐이다. 육신으로 난 사람이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으로 거듭나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과정이 하나님 세계의 천지창조고, 그 뜻이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인 땅에 이루어진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다.


이것을 나누어서 설명한다면,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은 사람이 있고, 그 존재 중에서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 있어 하나님의 본성이 자신의 본성이 된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육신이 사람인 존재가 있고, 하나님의 의가 본성이 되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창조목적이 본성이 된 사람이 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첫 번째 아담, 두 번째 아담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또 육에 속한 사람, 영에 속한 사람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본성이 자기 생명이 되었다는 것은 아들이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의가 자기 삶의 본성이고, 삶의 목적인 사람은 육신으로 살아가는 모든 순간 하나님의 의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아들이다. 아버지의 의가 육신이 되어 살아가는 존재가 아들이다. 아들이 있다면 아버지가 있는 것이고, 아들이 살아가면 그모습 속에서 아버지의 성품이 나타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당연히 육에 속한 사람이며 첫 번째 아담이다. 육신으로 나서 하나님을 알기 전까지의 사람은 창조의 대상이고 구속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습은 육신으로는 사람으로 났지만, 아직 하나님의 의가 자기 본성이 되지 않은 모든 사람의 모습이다. 선악과를 먹은 사람은 창세기 1장 2절에 나오는 어둡고 혼돈하는 땅이다.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천지창조, 곧구원의 여정이 시작된다. 육신으로 난 모든 사람은 창세기 1장 2 절의 땅이다. 육신이 자라면서 온 세상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기 전까지 하나님의 목적에 빚진 상태다. 언제라도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만 있을 뿐 죄와 사망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속은 아담의 범죄에 따른 후속 조치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창조의 과정이며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같은 안목을 가져야만 이해하고 알 수있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육신과 사람과 하나 님에 대한 관점이 하나님과 동일하다. 거듭나야만 알 수 있는 것이란 뜻이다.


그리고 거듭난 사람이 되는 것은 자신이 선악과를 먹은 존재 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므로 그 고백 없이 하나 님의 계획 안으로 갈 수 없다.


하나님의 구속은아담의 범죄에 따른 후속 조치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창조의 과정이며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태어나, 살고, 죽는 존재로 이땅에 보내신 육신 가진 삶을 살 동안 하나님이 사람 만드신 뜻에 순종하는 선택할 때 얻는다. 그렇게 얻는 구원은 하나님이 베푸신 것이고 하나님의 사람 창조다. 그렇기에 사람이 그 선택을 할 수있도록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예비하셨다. 그 예비하심의 결정 체가 예수 그리스도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고, 무엇을 먹을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심이 여기서 나온다.


육신으로 났을 때 모든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세계가 창조되지 않은 창세기 이전의 상태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육신이 인지하는 세상 곳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또 무엇보다 성경과 그리스도가 있다. 그것을 보고 선택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선악을 판단하며 사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 선택이 바로 선악과를 먹은 것이다. 당연히 죄와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천지가 창조되지 않은 상태나 선악과를 먹은 상태는 육신으로 나서 호흡하며 살고 있지만, 아직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지 않아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않은 모든 사람의 상태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하나님의 유혹이나 시험이 아니라 자기 육신이다. 선악과를 먹는다는 것은 자기 육신을 하나님과 같이 주관하면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선택이다. 이것을 먹지 않고 그냥 두면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가 있을 때와 같이 사람은 만족하고 하나님은 뜻이 이루어졌으므로 안식하신다.


그렇지 않고 선악과를 먹으면 자기 육신을 자기 것으로 삼은 것이다. 먹었다는 것이 자기 것으로 삼았다는 것이고, 주관하여 하나님과 같아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판단대로 선과 악을 판단하니 선악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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