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요 5:21-23)


예수님께서는 또 하나님께서, 아니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살리심과 같이 아들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를 살리며, 아버지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아들에게 심판의 권한을 주셨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먼저 죽은 자를 살리는 것에 관한 말씀에서 중요하게 봐야할 것은 무엇이 죽은 것이며, 또 예수님께서 살리신다는 원하시는 자는 또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죽은 자는 살다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 죽음에 정관사 the를 붙이고 있는데, the가 붙어 있다는 것은 ‘죽음’이라는 상태와 개념 전체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죽음과 같은 하나하나의 죽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상태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육신이 죽었는데 그것에서 살린다는 개념이 아니다. 이것은 죽음이라는 상태, 하나님이 보실 때 죽은 것인 상태에서 살리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죽은 자라 하는 상태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에서 살리신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것은 육신의 죽음보다 더 크고 근본 된 개념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사람은 하나의 피조물이다. 물론 다른 피조물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유일한 존재인 것이 그렇다. 그렇다고 육신의 목숨, 그것이 ‘사람이 살았느냐? 죽었느냐?’를 가늠하는 기준은 아니다. 피조물이기에 그 만드신 목적 안에 있다면 산 것이고, 목적 밖에 있으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로 훌륭한 육신을 가지고 있어도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신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 밖에 있어 하나님이 보실 때 죽은 자와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존재로 일으키신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겉은 멀쩡하지만 시간이 맞지 않는 시계를 고쳐서 시각을 정확히 알려주게 되어 주인이 그 시계에 대하여 가진 목적이 이루어지는 상태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바로 이 죽음과 이 살리심의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 죽음에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은 목적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하나님이 보실 때 죽은 상태에서 하나님이 보실 때 살아 있는 존재가 되는 법이 어떤 것인지를 예수님을 통하여 보이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과정과 법, 하나님의 의가 육신으로 나타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이고 죽음에서 살아난 것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과 의가 사람에게 회복되는 것이 하나님의 살리심이기에, 하나님의 의와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난 예수님은 육신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 안에서 살게 되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의와 사람 지으신 뜻이 육신으로 나타난 존재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이 아버지가 가진 의고, 그 의가 육신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아들인 것이다. 육신으로 한 남자가 자신의 가문을 이어갈 아들을 얻겠다는 의를 가지고 혼인하여 가문을 잇겠다는 그 의를 육신을 가진 아들로 얻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그렇게 얻은 아들은 온 가문의 의도하는 의도가 육신으로 태어난 존재이듯이.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만드신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표현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이야기 되고 어떤 삶의 주제가 되기를 바라시며, 또한 하나님의 성품이 무엇인지를 나타내고자 사람을 만드신 것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나타내라고, 그래서 사람을 보면 하나님의 이미지가 떠오르라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image)’대로 만드셨다는 말씀의 본질이다.


한 사람, a man이 존재한다면 어떤 예외 없이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그 사람을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즉 아버지를 증거하는 것이다. 또한 아버지가 흑인인지 백인인지와 같은 혈통도 드러나고, 또한 그 성품도 드러난다. 그것이 아들이다. 그것이 아들이 아버지를 증거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육신으로 그런 법을 알고 있다는 것은 a man을 통해서 그 아버지가 존재함을 알듯이 육신을 가지고 살면서 이 ‘사람’이라는 존재, 곧 the Man의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배우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라는 존재를 있게 하신 아버지, 사람의 존재 목적과 삶의 의미를 부여하시고 주신 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의를 자신의 존재 목적으로 삼으면 산 것이고, 그것을 모르면 죽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생명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이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람 만드신 의가 육신이 되신 분이고, 하나님이 보실 때 죽은 자와 같은 인생들은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은 망각하고 눈에 보이는 이 육신의 삶이 자기 존재의 본질로 알고 살아가는 것, 그 차이 뿐이다.


그 망각의 상태, 자기 존재의 목적과 삶의 의미를 모르는 혼돈과 흑암 중에서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게 하는 존재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이유가 바로 자기 존재의 목적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죽은 인생들에게 구원이고 빛이고 생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죽은 자를 살리는 권세가 아들에게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지 않고서는 사람이 자기의 존재가 예수님과 다르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과 의가 육신이 된 삶과, 보이는 것을 본질로 알고 흑암에서 살아가는 자기 삶의 차이를 알 수 없기에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자라는 것은 홍길동은 되고 일지매는 안 된다는 식의 개체에 대한 말씀이 아니다. 즉 육신으로 누구는 원하시고, 누구는 원치 않으신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쓸 이유가 없다. 그런 개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은 들린 놋뱀과 같은 예수님을 보기를 원하신 예수님의 뜻,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을 보고서 사람이 자신도 그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그 예수님의 원하심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예수님의 원하심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면 예수님께서 살리시기로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살거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절대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 곧 죽은 자 중에서 살리심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죽음은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을 알지 못하는 삶을 사는 인생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아들이 아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의가 육신이 된 존재인데, the Man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을 알지 못하니 아들도 아닐뿐더러 죽은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사람 지으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존재 목적을 그 분을 통해서 보이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의가 육신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형상대로 사람 지으신 목적이 이루어지신 분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아버지를, 하나님을 표현한 것이고 나타낸 것이다. 그 형상 곧 이미지가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을 보고서 자신도 예수님과 같이 아버지가 있다는 것, 곧 자신을 지으신 이가 있고, 그 분께 자신의 존재 목적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산 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이다. 그것이 영생이고 생명이다. 그리고 사람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그 사람에게 이루어진 것이기에 그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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