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44-50) 예수님의 말씀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복음 Date : 2016. 4. 13. 14:59 Writer : 김홍덕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저버리는 사람들을 심판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여기서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비단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도 어떤 말은 무엇인가를 전달하기 위하여 한다.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역시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어떤 것을 말씀하시고자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입으로 한 말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이 무엇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예수님의 오심 그 자체가 말씀이고, 오히려 입으로 하신 말씀은 그 일부일 뿐이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한 것을 믿는다는 것은 그 내용이 객관적으로 사실이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한다는 것은 받아주기를 바라는 기대로 하는 것이지 전하는 내용의 검증을 의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전하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하신 것은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전하신 내용이다. 그러니까 사람 지으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순종하기를 바라시면서 전하신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이 사실이었다는 객관성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이시고 전하신 내용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순종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나를 지으신 분이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전하시는데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 그 객관성을 역사적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라고 하면 그것이 과연 믿음일 수 있겠는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보이시고 전하신 것이 바로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것을 믿으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이것을 믿지 않으면 예수님을 저버리는 것이다.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외면한 체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만 객관적으로 믿으려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저버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면서 까지 말씀을 전하셨는데도 그 전하신 뜻이 아니라 육신으로 나타내신 예수님의 기적이나 행하신 일들을 자기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베푸실 것이라 믿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으로 예수님을 저버리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심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심판을 하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예수님을 저버리는 사람을 심판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과 예수님의 말씀이 심판한다는 것은 어떤 차이인가? 같은 것 아닌가? 싶겠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예수님은 심판하러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지으신 사람에게 사람의 정체성을 알려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다. 그 사람의 정체성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이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그것이라는 것이다. 즉 사람은 하나님의 의와 성품을 나타내는 존재로 지으셨다는 것이다. 의와 성품이 나타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아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전하고 하신 하나님의 뜻 그것이 바로 사람을 심판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전하신 그 하나님의 의가 사람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 주기를 바라며 전하신 의를 자기 삶의 목적과 의로 삼느냐 아니냐가 바로 사람을 심판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씀은 당연히 예수님의 자의로 하신 말씀이 아닌 것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과 모든 것은 다 예수님의 자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시니 그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전하신 그 말씀이 바로 영생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전하신 말씀이 왜 영생인가? 그냥 하나님이 하셨으니 영생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이라고, 또 예수님께서 그것을 전하시면서 그것이 영생의 말씀이라고 하신 것은 당연한 근거가 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사람을 향하여 하신 말씀이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왜 영생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사람이 따로 공부하거나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알 수 있는 영생의 법이라면 적어도 그 영생의 법은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적어도 자신이 사람이고 인생이라는 것만 인지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영생이라는 것을 아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 영생이라는 것이 진시황의 희망과 같이 불로초를 먹고서 육신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이를 아는 것, 즉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신 그 말씀을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생을 생각할 때 진시황과 같이 몸이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저버리는 것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체.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신 영생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나타내시겠다는 것이지, 사람의 육신의 삶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서 육신의 문제를 의탁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의를 저버리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이고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성경을 문자 그대로 지키려 하는 것이다. 그게 가능이나 하면 또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닌데 허구한 날 노력한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말씀의 문자 그대로를 믿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살다보면 실생활로 증명이 된다는 것이나, 예수님의 기적이 다 사실이었음을 역사적 과학적으로 실증된다고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청전이 바다에 빠져야 효도라고 전하는 것이 아니듯이 예수님의 말씀도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전하신 것이 자기의 운명이요 정체성이라는 것에 순종하면 예수님과 같이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전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또 성경을 통하여 전하신 사람 지으신 분으로서 사람의 정체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그 의도를 사람이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육신이 되는 것이다. 육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생명이 사람 안에 있고 그 생명의 본성대로 사는데 그 생명의 본성이 명하는 것을 어길 방법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영생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존재가 된 것은 하나님과 하나가 된 것이기에 당연히 영원한 생명이 되는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는데 무슨 수로 영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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