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3:9-13) 보습을 쳐서 칼을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엘 Date : 2020. 8. 3. 08:56 Writer : 김홍덕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대상인 이방에게 전쟁을 선포하라고 여호와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전쟁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의의 충돌이다. 사사로이는 개인간의 싸움이나 나라 혹은 민족 간의 전쟁은 모두 서로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과 충돌이다. 하나님께서 이방에게 전쟁을 선포하시고 전쟁에 임하시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아닌 것을 진멸하시겠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보습(농기구)를 쳐서 칼을 만들고, 낫을 쳐서 창을 만들라고 하신다. 심판의 연장선에서 이방인에 대하여 전쟁을 하자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어서 곡식을 베기 위해서 낫을 쓰라고 하신다. 낫을 창으로 만들라고 하시고서 금방 낫으로 곡식을 베라고 하신다. 속된 말로 놀리는 것 같아 보일 수 있다.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찌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찌어다(욜 3:10 상)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욜 3:13 상)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심판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어떤 보응, 어떤 조지, 어떤 방법으로 행하시는지 그리고 결과는 어떻게 되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심판은 앞선 포스팅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동전의 앞뒤와 같이 구원과 함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심판의 일환인 전쟁은 힘으로 상대를 궤멸시키고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 심판의 본질은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려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상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 5:22)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낫으로 창을 만들라고 했다가 이내 낫으로 곡식을 베라고 하신 것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심판과 맥을 같이한다. 곡식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기에 낫으로 곡식을 벤다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추수, 곧 목적하신 바를 달성하신다는 의미다.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과 같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은 예수님이 보이신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이 기준이고 법이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보이시므로 심판의 기준이 세상에 제시되었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리스도이자 하나님 아들로 말씀하시는 사람 지으신 뜻이 자기 인생의 목적이 된 사람은 구원을 받은 것이고, 그것이 아니면 심판을 받은 것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라는 하나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사람에게 보이신 것이 구원과 심판을 가르는 법인 것이다.


심판의 기준과 법이 없으면 심판도 없다.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당연히 구원이 없듯,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심판의 기준도 없으므로 심판도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심판은 육신의 삶에 고통을 주고, 지옥 불에 던져 영원한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이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존재의 목적대로 존재하고 살지 않음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지옥이란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섰는데 하나님께서 “네게 준 인생은 그렇게 살라고 준 것이 아니다”라는 말 한 마디일지 모른다. 육신으로 살 동안도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기억하는 것이 괴로운데 영원히 후회해야 하는 고통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생지옥이다.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고, 낫을 쳐서 창을 만들어 이방인을 무찌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보응으로 괴로움을 줄 것이라는 말씀이 아니다. 고통은 이미 스스로 받고 있는 것이 사람이다. 인생을 괴로운 것이라고 실토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심판을 받았고 고난을 받은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보습이든 낫이든 그것으로 심판을 한다는 것은 보습과 낫을 든 사람이 심판의 대상을 쳐서 죽이거나 고통스럽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곡식으로 거두는 것이 심판을 말씀하시는 근원적인 목적이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집을 압수한다는 것이 집을 압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하겠다는 것이 목적인 것과 같다. 그래서 방금 창을 만들라고 한 낫으로 곡식을 베라고 하시는 것이다.


질그릇의 선택
국내도서
저자 : 김홍덕
출판 : 바른북스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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