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요엘서의 전개는 신앙 여정을 함축하고 있다. 메뚜기 재앙이란 인생이 하나님이 자신을 지은 목적이 아니라 육신의 정욕에 매인 다수의 사람들의 가치를 좇아 사는 것이라 말씀하고, 그렇게 다수의 사람이 좇는 것이 선하고 의로운 것이라 여긴 자신의 삶이 곧 재앙이었음을 깨달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임하신다고 하시며 사람이 자신의 삶을 재앙 곧 죄와 사망이었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의 세계가 임하고 열린다는 회개와 거듭남에 대하여 말씀을 이어 왔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의 신, 곧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하신다. 자신의 삶이 곧 재앙이었다는 고백에 이어 물세례와 같이 자신이 그 속에 살 수 없다는 어둡고 캄캄한 날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그 날이 곧 여호와의 날이고 그 날로 인하여 하나님의 양식과 포도주와 기름이 회복된다. 그것은 곧 제사의 회복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육신의 삶으로 그 의를 나타내시는 것에 자신을 드리는 제사가 회복된다는 의미다.


제사의 회복은 곧 사람의 창조 목적의 회복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실존과 성품과 의를 표현하기 위한 형식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 존재의 목적을 알고 하나님께서 쓰시겠다는 것에 자신을 순종하는 것이 제사고, 그 순종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사람을 통하여 그 의를 나타나는 육신의 삶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된 사람이 그리스도(a christ)다. 하나님의 의가 형식이 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의가 육신이 된 존재 곧 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니 그리스도다. 그리고 이것은 메뚜기 떼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육신의 정욕을 좇아 가는 것과 반대로 아주 적은 수지만 하나님의 창조 목적 아래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여기는 삶이기에 거듭난 삶이다.


그게 구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다는 것은 사뭇 다른 세계다.

사실 이 사이에 욥기가 있고 복음서 후반에 나오는 제자들의 갈등도 있다. 욥기에 나오는 욥의 고난은 구원을 받고 성령이 임하는 때 그 사이에 사람이 겪는 곤고함이기 떄문이다.(이것은 이 블로그 욥기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었다.) 바로 그 깊은 신앙의 여정을 요엘에서는 “어둡고 캄캄한 여호와의 날”로 간략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성령을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요엘은 꿈과 예언과 환상으로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신앙이 거저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의라 생각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의로 살고, 그것을 말하며, 그 의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예언하며, 사람들에게는 환상과 같은 하나님의 세계를 자신의 일로 말하게 되기까지의 신앙 여정을 요엘이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은 초능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성령은 그리스도로 잉태케 하시고, 신앙에 대한 의문을 없게 하시는 분이다. 즉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의 생명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대하여 밝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했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인지 알게 된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났다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정체성과 하나님의 의가 자기 본성이 되었다는 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성령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성령 세례, 곧 성령이 자신에게 임했다면 삶의 목적은 물론이고 그리스도가 무엇인지,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한 것인지가 밝히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성령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이다.


성령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단지 능력을 얻지 못했다거나, 아니면 신앙의 고급 단계 혹은 성숙함에 이르지 못한 문제가 아니라 구원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성령으로 잉태되어 거듭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질그릇의 선택
국내도서
저자 : 김홍덕
출판 : 바른북스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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