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1:5-7) 내 포도나무, 내 무화과나무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엘 Date : 2020. 6. 11. 10:04 Writer : 김홍덕

질그릇의 선택
국내도서
저자 : 김홍덕
출판 : 바른북스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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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욜 1:7)


포도나무는 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무화과나무는 율법과 관련되어 있다. 율법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무화과가 이스라엘의 나라 나무라는 점도 연관이 있는데 가장 핵심적인 관련성은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실 때 “열매가 없다”라고 하신 점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열매는 삶의 모습이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의”라는 내용이 육신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난 존재였다는 의미고 그 육신이란 형식은 결국 육신으로 사는 삶이다. 이는 하나님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의가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난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표현이다.


예수님께서 첫 열매가 되셨다(고전 15:20, 약 1:18)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본성으로 거듭나야 하는 사람이란 존재의 삶이 어떤 것인지 십자가에서 처음 보이셨다는 말씀이다. 이와 같이 열매는 삶이다.


그리고 무화과나무가 율법을 의미한다는 것은 율법적인 삶이라는 의미다. 특히 요엘서에서 하나님은 메뚜기 떼가 무화과나무의 (껍질을) 긁어 말갛게 벗겨버렸다고 하고 있다. 껍질은 형식의 가장 표준적인 상징이다. 즉 무화과나무를 긁어 그 껍질을 말갛게 벗겨버렸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삶의 모습, 신앙의 행동과 규례가 모두 없어졌다는 말씀이다. 그것이 바로 메뚜기 떼와 같은 대중성으로 인하여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형식을 중시하신다는 말씀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여기에 무화과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포도나무와 함께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무화과나무 이전에 먼저 메뚜기 떼가 포도나무를 멸하였다는 말씀이 있다. 포도나무는 그리스도와 그 본성을 의미하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즉 요엘 1:7절의 말씀은 메뚜기 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본성이 도말되므로 그 결과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없어졌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서 생명이 되고 그 생명의 본성이 육신으로 표현되는 것이 기본 구조다. 그 이유로 형식이 없는 영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형식으로 사람의 육신을 만드시고, 그 속에 거해야 하는 하나님 의의 본성이라는 생명을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보이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 곧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된 존재인 그리스도라고 하고, 모든 사람이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의가 속심령의 본성이 되어 그 본성이 육신의 삶으로 나타내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을 묵상하고 순종하지 않고, 세상의 가치, 곧 많은 것이 이기고 선한 것이라는 가치를 하나님의 땅인 신앙에 가지고 와서 교회도 크게 건축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은혜가 넘친다고 하고, 많고 크고 이긴 것을 성취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는 것을 신앙으로 여기고 합하려 하니 낮아지신 그리스도의 법이 완전히 훼손되는 것이다.


포도나무 곧 예수님은 낮아지고, 좁은 문으로 가고 섬기는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믿음과 신앙은 그 반대인 세상의 높은 곳, 이긴 곳, 많고 큰 것을 향해 가고 있으니 포도나무가 메뚜기 떼로 인하여 다 훼손되었고,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본성이 없어지고 나니 당연히 하나님을 섬기는 온전한 삶의 모습도 말갛게 벗겨진 무화과나무와 같이 없어졌다. 이것이 바로 요엘서가 오늘 교회에 하시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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