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반추(反芻)하자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7일간의) 낯선 그리스도 Date : 2020. 12. 26. 22:12 Writer : 김홍덕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놀라고 믿을 수 없었던 제자들의 모습부터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면 성경은 내 삶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것까지 설명했다. ‘그리스도가 어떻게 십자가를 지는가?’라는 제자들이 느꼈던 생경스러움이나 어떻게 우리가 성경대로 살 수 있다는 말인가?’라는 의구심은 동일한 프레임이다. 이 두 가지 의아함을 동일한 프레임으로 연결하는 것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하나님이 만든 세상에서 심판을 받아 십자가를 지시므로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가 어떻게 세상에서 천대를 받는가에 대한 의문을 몸소 해결하셨고,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으로 오시므로 육신을 가진 사람은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이셨다. 그렇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를 지시므로 사람이 가졌던 자기들의 생각을 허무셨다.

 

이런 하나님의 법은 사람들의 생각과 방향이 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성경을 다 지킬 수는 없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은 낮은 곳을 보시는데 사람은 낮은 곳을 보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높은 자라고 생각하는 것과 성경을 다 지킨다는 것은 보통의 사람 이상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 생각과 반대라는 증거다.

 

하나님과 사람의 생각이 반대라는 것의 대표적인 것은 방향성이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사람은 높은 존재라 여기는 반면 하나님은 낮아져서 자기 육신을 높아진 자의 주장 앞에 내어주는 존재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을 지킨다는 것 역시 그렇다. 사람은 성경을 보고 그것대로 행동하면 성경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하는 반면 하나님은 사람이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살면 그 삶이 성경을 이룬 것이라고 여기신다.

 

생명은 본성이 있고 본성은 삶과 행동을 이끈다. 그리스도로 나면 그리스도의 본성이 삶을 이끌고 그리스도의 본성이 이끄는 삶은 예외 없이 행동이 있다. 그 행동, 그 삶을 기록하면 성경이 된다.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도 사실 그것이다.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므로 그 의가 이끄는 삶을 산 삶의 이야기, 예수님의 정체성과 말씀과 삶 그리고 예수님을 인하여 거듭난 제자와 사도들의 삶과 생각과 말을 기록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리스도로 거듭난 모든 사람의 이야기 역시 하나님의 말씀과 같고, 그 모든 하나님의 말씀의 원본인 예수님의 말씀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시듯 예수님을 인하여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삶이 된 하나님 아들이니 그들의 모든 것은 당연히 성경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이 당연함이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어색함이 되어야 한다. 십자가를 지러 간다는 예수님이 낯설었던 제자들처럼 그래야 한다. 성경에 분명히 그리스도로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는 동일한 혈통, 동일한 생명, 동일한 본성과 동일한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가진 생명이 되는 것이라 하고 있다. 그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심과 같이 스스로가 거듭났다고 믿고 살았다면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렇게 된 자신은 모든 것을 이룬 존재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게 성경이 말씀하시는 거듭난 사람의 정체성이다. 그렇지 않다면 거듭났다는 것은 자기 착각일 뿐이다. 그 착각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제자들이 십자가를 지러 가신다는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어서 그렇게 괴로웠던 것처럼, 오늘 자기 스스로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면 자신이 성경을 다 이룬 사람, 성경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 이루어진 사람, 성경의 모든 말씀이 자기 본성임이 발견되는 사람, 성경의 모든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가 되는 사람, 자기 삶을 돌아보니 성경에 기록된 것을 발견하는 감동을 가진 사람으로 살고 있지 않다면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을 느껴야 한다.

 

스스로 존재하지 않았는데 존재하게 되었음에도 자기 존재의 목적을 알지 못하고 살면서 태연하게 교리 문답에 답했다는 것을 구실로 자신이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이라 믿으며 시계추처럼 교회에 왔다갔다하며 예수님처럼 되려고, 또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며 태연하게 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것이다. 아니 하나님을 외식으로 기만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높아지려는 자기 육신의 정욕을 이루기 위하여 세상 가치로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을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만한 것이 아니며,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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