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 오순절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7일간의) 낯선 그리스도 Date : 2020. 10. 23. 04:00 Writer : 김홍덕

(행 2장)


예수님의 약속대로 성령이 오셨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오순절 성령강림이 그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듯 신비함이나 기적 혹은 능력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성령이 오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본질이 아니라 부가적인 현상이나 성령이 오신 목적을 위한 도구적 현상일 뿐 본질이 아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알게 하는 영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게 하시는 영이며, 하나님이 생명으로 여기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잉태되고 거듭나게 하시는 영이지 육신의 한계를 넘는 능력을 보이시는 것이 본질인 하나님의 위(位)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은 성령을, 성령의 능력을 육신으로 불가능하고 어려운 일을 행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성령은 육신의 능력 이상의 기적과 신비함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과 삶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예수님 자신이 성령으로 인하여 잉태되신 분이다. 


성령과 관련하여 예수님께서 성령의 잉태하셨다는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게 하신 이가 바로 성령이란 의미는 우리를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하시는 이도 성령이라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삼위에서 아버지 곧 의를 가지신 하나님, 곧 하나님의 의가 말씀이자 성부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의 의는 사람에게는 존재 목적이다. 그 하나님의 의이자 사람의 존재 목적인 말씀을 순종한 육신,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된 존재가 바로 하나님 아들 곧 성자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가 육신 가진 인생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되게 하시는 이가 성령이다. 이것이 삼위일체의 본질이다.


이 삼위일체가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각처럼 하나님이 사람과 다르고 놀라운 존재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라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삼위(三位)는 바로 인생의 구원이자 삶의 목적에 관한 근간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들 성자가 되시는 법이 아버지의 의가 육신으로 나타난 아들이 되는 것이며, 그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이가 성령이라는 원리와 법이 삼위일체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것은 단지 동정녀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모든 인생이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가 되는 법이 바로 성령께서 잉태케 하심임을 말씀하심이다. 또한 예수님이 우리와 형제라면 그 생명을 형성한 아버지와 잉태되는 주체와 법이 같아야 형제임은 말할 것도 없다. 즉 하나님의 의와 뜻이 육신이라는 존재 안에서 생명이 되어 그 육신의 삶을 그리스도의 본성대로 사는 거듭난 생명이 되게 하시는 이가 성령이요, 성령으로 잉태된 생명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말씀이 육신 곧 삶이 된 육신 가진 삶을 사는 사람이 하나님 아들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셨다고 하심과, 말씀(하나님의 의)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예수님만의 일이 아니라 예수님과 동일한 육신을 가진 모든 인생의 일이어야 하므로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 것은 알았지만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하여 심한 혼돈 속에 있었던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시면 모든 것을 알게 하시겠다고 하신 것도 우리 모두의 일이다. 제자들의 심령에 심겨진 예수님의 말씀과 삶, 그리고 연약한 육신을 가진 예수님이 곧 하나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는 믿음을 성령이 오셔서 생명이 되게 하신다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성령이 오시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따라서 성령이 오셨다는 것은 난데없이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성령이 오시는 심령에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다는 의미다. 맨 땅에 헤딩하듯 오시는 성령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예수님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아니 그렇게 되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어야 성령이 오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다르니 우리는 노력할 뿐>라는 신학에서 파생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성령이 임할 리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 분명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성령은 돌밭에, 길 가에, 가시밭에 씨를 뿌리는 어리석은 농부에 불과하다. 그게 아니란 말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다르니 우리는 노력할 뿐>라는 신학에서 파생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성령이 임할 리는 없다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심과, 육신 가진 모든 인생이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을 위하여 지음 받았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오시지 않는다면, 세상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에 대한 당연한 대우라고 여기는 신앙을 가진 이들의 믿음과 같이 육신의 능력 이상의 기적을 보이는 분이 성령이라고 믿는 이들이 스스로에게 강림했다고 말하고 믿는 성령 역시 하나님의 성령이 아니다. 예수 믿으니 세상에서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이들은 성령과 전혀 무관한 어두운 사람들이란 말이다.


그러나 자신들과 같이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었지만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하여 혼돈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과 약속대로 성령이 오시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제자들 안에 있던 믿음, 자신들과 같은 육신을 가진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들이라는 믿음이 곧 자신들의 이야기 되었다는 의미다. 성령이 오셔서 영원히 함께 하실 뿐 아니라 예수님의 모든 것을 증언하실 것이란 말씀대로 제자들 안에 있던 믿음이 예수님과 동일한 그리스도의 본성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오늘을 사는 육신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일이어야 하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므로 보이신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밝아지지 않는 것이 예수님이다. 성령이 오시기 전 제자들이 알지 못하고 밝지 못하여 그렇게 곤고하게 만들었던 그리스도의 정체성, 그리스도라는 예수님에 대하여 알지 못했던 것들이 성령이 오시므로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밝아졌다. 베드로가 성령에 충만하여 설교하는 일이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공부한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령이 생명으로 잉태케 하신 그리스도라는 생명 본성이 베드로를 이끈 것이다. 그리스도를 전하려면 신학을 전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나기만 하면 된다는 것도 보여준다. 자기 이야기만 하면 되는 것이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자신이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오직 성령으로 잉태된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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