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 성령이 오시면 (3)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7일간의) 낯선 그리스도 Date : 2020. 10. 31. 15:51 Writer : 김홍덕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높아지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은 단지 예수님을 보는 것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 아들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높은 존재로 보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자신 역시 세상에서 높은 사람이라고 여기거나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이니 세상의 임금 이상의 대우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예수 믿으면 육신의 평안과 세상에서 성공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DNA가 같은 생각이고 믿음이다.


즉 하나님께 육신의 평안과 세상에서의 성공을 구하고 기도하며, 화려한 교회를 하나님의 영광이라 여기고 육신의 삶의 질이 세상 가치로 상승되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기는 관점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 세상의 임금보다 너 높은 자리와 권세를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것을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증명한다. 예수님께 육신과 세상의 일을 구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그런 가치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 가치의 법으로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다. 그런데 이 모순을 외면하고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육신의 평안과 세상에서의 성공을 구한다는 것은 극도로 파렴치한 모습이다.


사람들이 가진 이 외식적인 신앙이자 일반적인 신앙은 비단 기도와 간구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 잘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들어 봤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그런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잘 살아야 한다.’, ‘모범적이어야 한다.’와 같이 기독교인들에게 아무렇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불문율에 가까운 말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 = 세상 모든 가치에서 높아지는 것>이라는 등식이 진리가 되었다는 증거다. 물론 안타깝게도 기독교인은 이 문제를 모른다.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어두움>의 본질이다.


이런 사람들의 어두움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우리와 동일한 육신으로 우리에게 오신 빛을 만나 밝아지게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그런데 이 밝음이 없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오지 않은 사람이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구원과 거듭남이 없는 사람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상태가 이런데 정작 자신은 교회에 가서 세례문답 등을 통해 자신이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문제가 개선되려면 문제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괜히 자기 죄(어두움과 존재 목적에 대한 무지)를 시인하면 죄를 사하신다고 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이제까지 신비한 기적을 일으키는 이가 성령이라고 알던 사람이거나, 방금까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육신의 평안과 세상에서의 성공을 바라며 기도하고 간구한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그런 모습이 어두움에 속한 것이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오늘날 누가 베드로와 제자들만큼 예수님을 잘 알겠는가? 그런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낯설어하며 힘든 시절을 거쳐서야 성령이 오셨는데 자신이 믿는 그리스도가, 예수님이, 하나님이 단 한 번도 낯설지 않고 줄곧 자기 생각과 같은 신인데 성령이 오실 리가 없다.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을 소망하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 가치와 도덕과 법으로 높은 지위에 이르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기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인데 아버지의 피조물인 사람들의 가치에 의하여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잘 수밖에 없는 낮아지는 생명 본성을 보이셨는데 그것이 낯설지 않다? 그것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삶일 수 있나? 그럴 수는 없다. 이런 낯설음과 회개가 없는데 구원을 받았다고 스스로 뇌까리고 그것을 증명한답시고 생명 본성에 관한 법을 학문을 만들어 합리화한 무덤을 칠하는 횟가루에 자기 영혼을 의지할 수는 없다. 그것은 구원도 거듭남도 없는 것이다. 성령? 오시기는커녕 성령이 누구신지도 모르는 일이다.


성령이 오신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돌아봄이 전제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낯설어야 한다. 예수님이 낯설다는 것은 낮아지는 예수님이 눈에 들어왔다는 의미다. 자신이 높아지는 것을 추구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께 늘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을 추구하던 사람이 죄인이 되어 낮아진 예수님, 곧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면 낯설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 정상이다. 이것도 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살았다고 여기실리 없다. 하나님께서 살았다고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이 곧 죄와 사망이다.


성령을 기다린다면, 아니 정말로 구원을 받은 영혼이 되고 싶다면 예수님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들이니 세상의 임금보다 높은 존재며 그에 상응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제자들과 예수님 당시 사람들만의 생각이 아니라 오늘 자신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고백되어야 한다. 그것은 Have to 같아 보이지만 양심과 상식만 있으면 되는 일이다.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는 세상 가치로 높고 높은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 가치에 의하여 죄인이 되고 낮아지는 본성을 가진 존재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그리스도를 높은 존재로 본다. 사람들의 그 가치관과 안목을 바꾸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성령이 오셔야만 되는 일이며, 성령을 그 일을 위하여 오신다. 그 바뀐 안목과 가치관은 생명에 있다. 거듭난 생명의 본성이다. 물론 그런 변화는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에 대한 믿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법이고, 예수님께서 하신 성령에 대한 말씀의 본질이다.


[주제별 성경 보기/(7일간의) 낯선 그리스도] - 베드로 - 두 가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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