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시작하는 신앙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내용과 형식 Date : 2015. 10. 22. 15:52 Writer : 김홍덕

이 글의 목적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주관자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신앙의 본질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 가면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인생을 주관하신다고 할 때, ‘과연 인생의 무엇을 주관하시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신앙이 흐트러진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살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주관하시는 주권의 본질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주관하시는 주권의 가장 본질은 창조에 있다.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생각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왜 만드셨는가?”하는 그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여기에 본질이 있는 것이다. 즉 만든 이유를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관하시는 것이다. 목적이 있어 만드셨다면 그 목적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동을 위하여 사람이 자동차를 만들었기 때문에 자동차에 연료를 채워주는 것이지, 자동차에 연료를 채우기 위하여 자동차를 만든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 그것이 사람 안에 있느냐? 아니냐? 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서 새 생명이 되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는 창세기가 시작되는 것이고, 그 생명이 장성하여 삶을 주관하므로 나타나는 그 사람의 모든 행동과 살아가는 모양과 생각과 말이 어떠한지를 기록한 것이 성경인 것이다. 즉 내용인 하나님의 의가 형식인 사람의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 외에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방향성은 없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순간까지 신앙이라는 것은 어렵고, 성경이 이해하기 어려우며, 사는 것이 힘들다고 여겼다면 그것은 방향이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성경을 읽고서 말씀에 기록된 대로 하면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갈 것이라고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아무 문제가 없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신앙적 가치관과 안목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가치관은 늘 ‘이렇게 해도 괜찮은가?’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고, 성경은 생명의 말씀인데, 생명이 ‘숨 쉬어도 되는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숨 안 쉬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숨을 참아보려 해도 스스로 숨을 참아서 죽을 수도 없는 것이 생명이다. 그것이 그런 것은 생명이 사람 안에 있어서 그 생명이 몸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것과 같이 성경의 모든 말씀은 그 말씀이 사람 안에서 생명이 되어 삶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적어도 스스로 그것을 그치게 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죽일 수는 있어도 주님을 부인하게는 할 수 없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고서 정말로 말씀대로 살고 싶다면 먼저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생명이 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정말로 믿음을 체험하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생명이 되면 성경의 모든 것이 내 삶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이 가장 크다. 죽은 사람 살려 본들 다 죽었지 않는가? 하지만 하나님의 의가 내 생명이 되어 그것 삶으로 나타나면, 이 육신의 장막을 벗어도 그 속에 있던 의는 영원하다. 왜냐하면 그 의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하나이고 하나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 의가 육신을 입고 살 동안 하나님을 표현한 것이니 당연히 그것은 하나님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작에 대하여 의심할 필요는 없다. 모든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이다. 사람이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마치 땅에 씨가 심기는 것과 같다. 땅에 씨를 심은 농부가 그 씨가 열매 맺기까지 최선을 다하여 돌보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생명이 되기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듣는 사람은 그 말씀이 생명이 되기까지 뿌린 이도 기르는 이도 다 최선을 다한다. 뿌린 이나 기르는 이가 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그것이다. 농부가 씨 뿌린 이유가 그 씨가 열매를 맺는 것뿐임과 같은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자꾸 하려 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마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면 살아 있는 생명이 그 생명을 끊임없이 표현하듯 쉬지 않고 하나님을 나타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당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뭔가를 해야겠다고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외식하는 신앙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고, 예레미야와 같이 하지 않으려 해도 마음이 불붙는 것 같이 견딜 수 없다면 당신 안에 살아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보다 스스로가 가장 잘 아는 것이다. 최면 걸듯이 속이지 않는다면.


인생은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형식이고 도구다. 그러니까 육신의 삶과 눈에 보이는 세상이 본질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 그 분의 뜻이 본질이고 내용이다. 그러므로 육신의 문제에 관하여 기도하고, 살아가면서 화를 당하지 않기를 바라고, 또 세상에서 성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결과에 대한 부러움을 사기 원했다면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알고 살아온 것이다. 그러한 것은 어떤 모양이라도 될 수 있다. 내용이 표현되는 것은 너무 다양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동을 위한 자동차의 모양과 크기가 다 다른 것이 그 때문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모두 하나님의 의가 인생을 통하여 표현되는 것에 관한 것이다. 말씀에 어떻게 하라고 하신 것은 그 행동 자체를 원하심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하는 생명을 가진 존재가 되라는 말씀이다. 이것을 착각하거나 외면하면 신앙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진정한 신앙을 원한다면, 그런데 오늘까지 성경을 지켜 행함으로 내 영혼의 정체성을 죽음에서 천국으로 바꾸려 했다면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 내 영혼이 먼저 은총을 입고 하나님 아들의 생명으로 거듭나면 성경의 모든 말씀도, 삶의 모든 필요도, 그리고 삶의 목적과 의미도 다 이루어질 것이다. 아니 그것을 금할 방법이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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