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주인의 재물을 훔쳐서 달아난 종 오네시모의 결국은 옥에 갇히는 것뿐 이었다. 이것은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나서 평생을 수고해야 하는 삶이 되고 하와는 출산하는 고통을 얻게 됨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사람의 인생을 한 글자로 표현하면 괴로울 ‘고(苦)’자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고 하기도 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훔쳐서 달아났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하나님의 영역인 선과 악을 판단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스스로 힘든 삶이 된 것이다. 실재로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은 스스로가 벗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무화가 나무로 자신을 가렸다고 했다. 선악과를 먹고 나나 자신의 벗은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기 전에도 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먹고 나니 부끄러워졌다는 것이다. 즉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미 그 마음 안에 어떤 것이 선하고 어떤 것이 악하다는 기준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기준 때문에 벗은 것이 부끄럽게 여겨진 것이다. 부끄럽다는 것은 악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렇듯 모든 사람들의 삶이 감옥에 갇힌 것처럼 곤고하게 된 이유는 스스로가 어떤 것은 선하다고 여기고 또 어떤 것은 악하다고 여기는데, 문제는 그 기준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한 부부가 냉장고를 사러 갔는데 남편은 삼성 제품을 사자고 하고 아내는 엘지 제품을 사자고 하다 싸우고 정작 냉장고는 사지 않고 돌아왔다고 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남편은 삼성 것이 좋다고, 즉 선하다고 여겼고, 아내는 엘지 것이 선하다고 여겼기 때문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갈등은 그와 같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함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시장에서 싸우는 사람이나 국가간의 전쟁이나 이유는 오직 하나다. ‘너는 잘못되었고 나는 잘한다’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너는 악하고, 나는 선하다’라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갈등은 오직 이것 하나 밖에 없다. 이것 때문에 세상이 곤고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훔쳤기 때문이다. 오네시모도 그러했다 주인의 것을 훔쳤기 때문에 옥에 가게 되었다. 모든 인생도 하나님의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인생이 오네시모가 갇힌 감옥과 같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감옥에 간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복음을 받고 자신을 돌이킴으로 바울이 형제라고 칭하게 되었다, .(몬 1:16, 골 4:9) 이것이 무엇으로 투영되어 보이지 않는가? 바로 예수님의 모습과 같은 것이다. 즉 빌레몬서에 나오는 바울의 모습은 하나님께 범죄하여 감옥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도 같은 것이다.

 

바울은 원래 그 이름이 ‘큰 자’라는 의미의 사울 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그것을 전하는 사도가 되면서 그 이름을 ‘작은 자’라는 의미의 바울로 개명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힌 것이다. 바울이 오네시모 같이 도둑질하고 도망 다니다 잡힌 것이 아니다. 그건 날 때부터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처럼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듯 예수님도 원래 하나님의 본체이신데, 자기를 비어 종의 형상으로 오셨다고 했다.(빌 2장) 바울이 복음으로 인하여 감옥에 갇힌 것처럼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을 하늘로 불러 올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그것도 우리와 동일한 육신을 가지고 오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사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시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을 주신 이유를 알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도 육신으로 오신 것이다.

 

흔히들 예수님의 사역을 갇힌 우리를 놓아주신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또 살아가는 삶을 고난이라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갇혀 있다고도 말을 한다. 그런 모든 정황은 다 우리가 갇힌 자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즉 우리의 삶이 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에 우리가 속하게 된 것은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 마음 안에서 어떤 것은 선하고 어떤 것은 악하다고 판단하는 것 때문에 늘 괴롭다.

 

눈에 보이기를 악하게 보이면 그것을 어떻게든지 바로 잡고 싶은 마음에 애쓰고, 또 어떤 것이 선하게 여겨지면 또 그것을 추구하느라 애쓴다. 뭐 그런 것 까지는 좋을지 모르지만,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악하게 보이면 불쾌하고, 선하게 여겨지면 질투하게 된다. 이러한 모든 것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사람에게는 아주 힘든 문제인 것이다.

 

사람이 그러한 문제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오네시모처럼 하나님의 것을 훔쳤기 때문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으니 이 세상에서 선하고 악한 것은 하나님만 정하시면 된다. 마트에서 산 물건은 자기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자리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주인의 마음이다. 전구가 화장실에는 가기 싫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주인의 마음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스스로 옥에 갇힌 것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