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신앙 (1) - 부활의 절대적 조건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21. 3. 27. 13:51 Writer : 김홍덕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은 부활을 믿는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부활에 관한 믿음에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 역시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이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 근거는 성경이 영생을 약속하셨다는 것에 기초를 두고 하나님을 믿기 시작할 무렵 교회의 대중 앞에서 세례문답으로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했다는 것에 둔다.

 

하지만 부활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오늘은 부활절을 앞두고 부활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 보고자 한다. 부활이 세례문답에서의 고백이나 예수님의 부활을 객관적 사실로서 믿는 것으로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다는 근거를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 보고자 한다.

 

  • 부활에는 절대적인 조건이 있다
  •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했다.

 

가지 관점은 글을 읽는 독자와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과 같이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활 신앙을 반추할 있는 척도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것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먼저는 부활의 조건이다. ‘부활에 무슨 조건?’ 라고 생각하겠지만 부활은 죽음이 절대적인 조건이다. 죽지 않았다면 부활을 이야기 없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이야기 항상 성경이 언급하고 있는 안식 이라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죽음이 있어야 하고, 죽음을 인한 안식이 있어야 한다. 죽음은 변할 수도 타협도 없는 절대적인 부활의 조건이고 죽음은 안식이 되는 죽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죽음은 육신의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죽음이 안식이 된다는 것에서 세상의 모든 죽음과 완전히 구분된다. 죽음은 하나님이 보실 때는 죽은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죽음이다. 하나님의 안에서는 살아야 하는 죽음이 부활의 절대적 조건이라는 말이다. 다시 살리신 이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실 하나님께 필요 없는 것이 완전히 죽은 죽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살리신다는 것은 죽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보실 죄와 사망이 없게 되고 생명이 있고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살리실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활의 전제 조건인 죽음은 세상의 허다한 죽음 중에서 하나님이 보실 생명이 있는 죽음이고 하나님의 의와 생명으로 다시 사는 분명한 죽음이다. 그리고 죽음은 안식이 되는 죽음이다. 안식 부활하셨다는 것은 부활 이전에 안식이 있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안식 부활하셨다는 것은 단지 달력의 시간으로만 본다. 그래서 안식일이 아닌 주일(일요일) 예배의 날로 지키는 명분에 도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안식 이란 말씀은 안식 역시 죽음과 마찬가지로 부활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을 표현한 말씀이다. 안식이 있고서 부활이 있었다는 것은 부활 전에 안식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안식이 있어야 부활이 있다는 분명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죽음과 안식이라는 절대적인 조건이 있어야 비로소 맞이할 있다. 죽음은 세상의 허다한 죽음과는 분명한 구분이 있다. 세상의 가치로 가늠할 없는 죽음이고 조건이다.

 

이는 성경에서 여러가지 일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을 부활했다고 말하지 않는 것에서 있다. 나사로와 같이 성경에서 선지자, 사도, 예수님이 살리신 사람들은 단지 죽었다 살아났다 하지 부활했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의 죽음은 부활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는 뜻이다.

 

부활의 전제 조건인 죽음은 육신의 죽음이 본질이 아니라 의의 죽음이다. 자신의 옳음과 의가 죽는 죽음이 바로 부활의 절대적인 조건이다. 자신이 가진 의가 죽는 것이 하나님이 보실 안식이 되고 다시 살리는 이유가 되는 죽음인 것은 사람이 가져야 것은 자기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질그릇과 같은 존재로 안에 무엇을 채워야 하는 존재다. 채울 것은 사람이 스스로 선택할 있게 하셨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선악의 기준을 채우고 자기 의로움으로 세상을 본다. 그러면 당연히 안에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시고 바라시는 하나님의 의가 들어갈 없다. 사람이 주인을 섬길 없다고 하심이 이것을 설명한다.

 

자기 의가 가득한 사람은 세상을 자기 가치관으로 본다. 그것은 사람에게 세상이다. 자신이 가진 의로움으로 보는 세상이 그에게 세상이고 우주며 모든 사회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기 전에 종말을 맞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세상이 바로 세상이다.

 

여기서도 어떤 죽음이 부활의 전제 조건인지 있다. 자기가 옳다는 의로움과 의로움에서 비롯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세상이 망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이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자 하나님의 성품인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 거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죽음이 또한 하나님 앞에 안식이다.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 거하는 안식은 스스로 정립한 선악의 기준과 의로움이 죽고 하나님의 의와 말씀과 성품이 사람 안에 거하게 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사람을 만드시기까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는 일을 하셨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세상을 하나님의 세상으로 보게 된다는 의미다. 사람에게 세상은 자신이 인식하고 규정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의가 죽고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세상을 보고 보이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하나님의 세상이자 그에게 세상의 전부다. 이것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세상이 창조되는 하나님의 천지창조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다. 그리고 안식은 일이 끝나야 얻을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일하신 목적대로 사람에게 하나님의 세상이 열리는, 자기 의가 죽고 하나님의 의가 사람의 본성이 되면 하나님의 일하심의 목적이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사람에게 하나님은 안식하신다. 하나님이 사람에 안식하시니 사람 역시 안식의 상태가 된다.

 

바로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 부활의 절대적인 조건인 죽음을 당한 사람이고 안식을 얻은 사람이다. 사람이 그렇게 되어야 부활을 맞이할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안식 부활하셨다는 것에서 부활의 절대적인 조건인 죽음과 안식이라는 것을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그런 죽음이 있었는지와 그런 안식이 있었는지를 반추해 보게 한다. 성경에 기록된 이유가 바로 오늘 성경을 대하는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었는지 깨닫게 하려 하심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하나님의 의와 뜻에 어긋난 것이므로 회개하게 하려 하심이다.

 

예수님께서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죽임을 당하시고 안식 부활하신 것은 바로 회개를 이끌기 위함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구속이고 우리의 구원이며, 예수님의 부활이고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하는 부활 신앙의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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