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베드로 사도는 예언을 함부로 풀지 말라고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옛 신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이제 이 하나님의 예언이 어떻게 풀리는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다. 주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사람들의 생각에 더딘 것 같은 주의 날은 주의 구원을 위함이라는 것에서, 그리고 그 주의 날이 임하면 하늘의 모든 것이 땅의 모든 것을 태우므로 모든 것이 드러나서 예언이 풀릴 것이라는 것이다.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말씀이지만 대부분은 하나님께는 우리 달력의 시간이 무의미하다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에게 천년은 너무 긴 세월이지만 하나님께는 별 것 아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시다는 의미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시간 개념은 달력에 종속되지 않고, 그 뜻하신 목적 위에 있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시각을 달력을 보며 기다린다. 객관적인 시간 개념인 크로노스적인 관점으로 시간을 본다는 것이다. 1992년 10월 26일 24시에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은 다른 생각을 하는 줄로 여기지만 앞선 글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지금이 말세라고 말하며 주님이 이 세상의 시간으로 언제 오실지 모른다며 기다리는 것도 사실은 같은 개념이다.


하나님의 시간 개념은 하루, 일 년, 백년, 천년과 같은 시간이 아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그 뜻하신 것을 이루시는 것이 시간이다. 12시가 점심시간이 아니라 배고플 때가 식사시간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다. 그런 시간관념 아래에선 하루나 천년이나 별다른 문제도 아니고 의미도 없는 것이다. 전쟁에 나간 아들이 돌아오는 날이 1월 1일이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그냥 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이 하나님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생이 그 창조 목적을 자기 삶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회복과 구원에 이르는 그 때, 그것 하나만이 하나님의 시간 개념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한 사람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인생을 주신 목적을 받아들임에 있어 다른 사람의 어떠함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삶을 주신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신 목적을 알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유일한 시간이고, 사람에게 바라시는 유일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달력의 어느 날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과실이 같은 날에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니라 각 열매 알갱이의 때가 차야 열매가 되는 것이듯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경영의 때가 차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때는 도적같이 이른다. 도적은 아무도 모르게 오는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더 본질적인 뜻은 도적이 오는 시각은 주인이 생각하는 때가 아니라 도적이 생각하는 때라는 의미이다. 도둑이 방문하는 시각은 도적의 마음이듯, 하나님의 때는 사람이 생각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라는 것이다. 그 때가 이르러 이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의고, 그 시간도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 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는 그렇다. 그렇게 그 창조하신 뜻이 이루어지는 때가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면 그 때에 이루어지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것은 이미 설명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땅의 모든 것이 불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땅의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이 사람에게 임하는 때가 되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땅의 모든 것이 다 불타고 땅이 드러날 것이라는 것인데, 그것은 사람이 가진 육신의 정욕이 모두 사라지고 땅과 같은 사람의 존재 정체성이 드러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말씀하고자 하셨기에 앞서서 옛 신앙을 언급하고, 육신의 정욕을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그 육신의 정욕이라는 땅의 체질에 휩싸인 성경의 이야기들, 발람과 발락과 같은 이야기들을 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풀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져서 육신의 정욕이 모두 불타고 없어진 다음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의 존재 목적이 온전히 드러나게 되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저절로 풀릴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어떤가? 과연 신학이 필요한가? 그런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님은 성경은 구구절절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성경을 또 예언을 사사로이 푸는 것은 신학 없이 푸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지지 않은 상태에서 풀이하는 것이다. 주신 이의 뜻과 다르게 푸는 것이 사사로이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성경을 보고서 옛 날 가졌던 신앙과 같이 육신의 바람을 얻기 위하여 어떻게 지킬 것인지 풀어내는 것도 사사로이 푸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을 알고, 그것이 자기 삶의 목적이 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여기는 공부도 필요 없고, 신념도 필요 없으며 노력도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뜻이 자신에게 이루어지도록 순종하는 것 그것 하나면 충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그 하나님 아들의 정체성이 자기 삶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 하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거듭나고 새로운 생명이자 삶이며, 새로운 세상이고, 성경의 모든 것이 온전하게 풀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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