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5:1-11) 젊은 자의 겸손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베드로전서 Date : 2018. 6. 15. 10:09 Writer : 김홍덕

장로들에 이은 젊은 자들을 향한 베드로 사도의 권면은 순종에서 겸손으로 그리고 염려를 버리는 것으로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나 겸손한 자는 그 때가 되면 높이시니 장로들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 능하신 손으로 높이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겸손이라는 것을 자기 자세를 낮추는 것이라고 일반화하여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자신을 낮추기만 한다고 겸손하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겸손이나 교만을 판단할 때 우리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 사람의 정체성이 있는데, 그것 이상으로 자신을 부풀려 이야기하면 교만이라 생각하고, 자기 정체성보다 필요 이상으로 낮추면 그것을 또한 겸손이라고 하지 않는 것에서 서로가 인식하는 그 사람의 수준이나 정체성을 기준으로 그 사람의 모습을 겸손이나 교만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겸손과 교만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겸손은 어디에 가서 마냥 자신을 낮게 표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장 겸손한 모습은 자기 정체성에 맞는 모습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속과 겉이 같은 사람이며, 겉과 속이 같다는 것은 속에 생명이 있어 그 생명의 본성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편으로 속에 있는 생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속에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께서 살았다고 하는 본성이 있다면 그것이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여기시는 유일한 것, 곧 그리스도의 본성이 자기 안에 있어서 그것이 육신의 모든 행위로 나타나게 될 때에 그것이 가장 순종적인 것이고 또한 겸손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것을 겸손이라고 한다면 교만은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성경에서 본다면 외식하는 자, 예수님께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하신 바리새인과 같은 자들이 바로 교만한 자들인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여기시는 것이 자기 안에 있어서 그 생명으로 인하여 모든 행위가 비롯되므로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살았다고 하는 사람, 곧 그 안에 그리스도의 본성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 안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겸손이라는 것이 자기 정체성에 맞는 모습이기에 사람이란 존재는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본성대로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셨기에 사람이 그리스도의 본성을 그 속에 가지고 있고, 그 본성으로 살아가는 모습일 때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온전한 겸손인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교만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든 목적대로 살지 않고 자기 옳은대로 사는 모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설사 그것이 일반적인 사회 관념상 아주 겸손하고 또 선하게 산다고 할지라도 스스로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여겨 그렇게 산다면 그것은 보기에는 아주 겸손하고 선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자기가 옳다고 여겨서 그런 것이기에 교만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하신 것입니다.(예수님께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한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삶의 모습은 지금 이 시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경건하고 도덕적인 삶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순종과 겸손은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에 순종하는 사람은 그 목적, 곧 하나님의 의가 자기 본성이 되어 그 본성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기에 그 모습은 자기 정체성에 가장 온전한 삶이 되니 그것이 바로 온전한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산다면 그것은 순종도 아닐뿐더러 그 모습이 아주 선하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교만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시는 겸손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 겸손을 특별히 젊은 자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우선은 젊은이들은 그 육신의 능력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실현하기에 충분할 뿐 아니라 성과도 나기 때문에 그것이 의로운 것이고 제대로 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젊다는 것은 시간적이 많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많다는 것은 가능성이 많기도 하지만 반대로 많은 시간이 남았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젊은이들에게 겸손을 당부하면서 그 겸손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때가 되었을 때에 높일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저 장로들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장로들이 하는 것과 같이 순종하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장로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것과 같이 젊은이들도 그렇게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곧 그 젊음을 자기 옳은 대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젊음이 주는 능력을 장로들이 본을 보인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에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장로들이 보여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여 증인이 되고 영광에 참여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것에 순종하고, 그와 같이 행하는 것이 바로 겸손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이 높이심은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으니 하는 일이 잘 되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심과 같이 그 삶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이는 자리에 간다는 것이며, 또한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심과 같이 그 정체성이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성경이 말씀하시는 순종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에 순종함이요, 겸손은 그 자리에 적합한 삶을 사는 것이며, 높이심은 그리스도의 세계 안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 아들의 모습을 보이는 자리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알고 보면 세상의 가치관으로 보면 낮아지는 것이고 죄인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베드로 사도가 권면하는 겸손에 관한 말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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