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사도는 자신과 함께 고난의 증인이며 영광에 참여한 장로들에게 양을 먹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보통은 장로가 되어서, 혹은 장로가 되어야 양을 먹이는 것이라고 여긴다거나 장로로 여김을 받는 사람들은 신앙이 어린 사람들은 훈계하고 가르치고 인도하라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말씀들, 부득이하게 하지 않고, 이익을 위하거나 또 주장하듯이 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은 양을 먹이는 방법, 장로로서의 자세 정도로 여깁니다.


그러나 장로로서 양을 먹이는 가장 본질적인 모습은 바로 본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이 된다는 것은 곧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앞서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신 애매히 고난을 받는 것이 바로 본이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본이 된다는 것은 더 가진 사람이 가지지 않은 자를 위하여 몸소 수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교가 시범을 보이는 상황을 가지고 본다면, 시범을 보이는 조교는 이미 그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자인데 아직 그것을 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하여 육신이 수고하는 것입니다. 이미 할 수 있는 자가 아직 하지 못하는 자를 위하여 괜히(애매히) 육신을 소비하는 것이 바로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베드로 사도와 함께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장로가 되는 것과 양을 먹이는 것은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장로여야 양을 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애매히 고난을 받는 자리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바로 장로요 그것이 곧 양을 먹이는 것이 되는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시는 애매한 고난을 받는다는 것, 그것이 바로 본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러한 장로들의 본을 젊은 자들도 본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젊은 자들에게 장로들에게 순복(종)하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장로들이 한 것과 같이 젊은이들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이것을 장유유서의 개념과 비슷하게 여기면서 교회에서 장로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순종이라고 우기기도 하는데, 그것은 정말로 말 그대로 우기는 것일 뿐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말씀하시기를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먼저 장로들에게 본을 보이라고 한 다음의 말씀이기에 장로들이 본을 보인 것과 같이 젊은이들도 그렇게 애매한 고난을 순종함으로 받으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은 베드로 사도가 베드로전서 1장에서부터 줄곧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고난’의 본질적 기반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시고 있는 이 법, 장로와 양을 먹이는 것과 젊은이들에게 순종하라는 이 모든 말씀은 바로 예수님과 자신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특별히 ‘양을 먹이라’고 하신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봤던 예수님의 모습과 말씀이 자기 안에서 생명이 되었기에 그것을 표현하는 것일 뿐입니다. 자신이 예수님과 같이 살게 된 것은 오직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삶에 자신이 순종하고 있는 것을 인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보이신 삶을 본 받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예수님께서 보이신 본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행위로 지은 죄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대신 벌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육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모르는 죄에 대하여 몸소 그것을 보이심으로 그 모습을 본받는 이들이 육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지 못하는 죄에서 해방되게 하신 것입니다.


육신의 사용법이라고 하니 좀 천해보일지 모르지만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바로 인생의 목적입니다. 인생의 존재 목적과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알면 분명히 육신을 가진 삶은 그것을 순종하고 자신도 그와 같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삶은 스스로 다른 사람들의 의 앞에 죄인이 되어 순종하고 수고하는 삶이므로 애매히 고난을 받는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따라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곧 십자가요, 그 육신으로 예수님께서 보이신 것과 같이 의롭지만 죄인들의 주장 앞에 자신의 육신을 드려서 수고하고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 곧 육신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예수님과 같이 살아가는 것이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장로들에게 고난의 증인이라고 하고, 본을 보이라고 하며 양을 먹일 것을 권면했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앞서 이야기 한 하나님을 믿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이들도 자기의 옳은 대로 행할 것이 아니라 장로들이 보이는 본을 자기 삶으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예수를 믿고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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