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4:7-11) 하나님과 같이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베드로전서 Date : 2018. 5. 25. 06:50 Writer : 김홍덕

마지막이 가까웠고,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하고, 사랑하고, 원망 없이 대접하라는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각각으로 지키려고 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이 권면들은 하나의 생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생명. 사람이라는 생명을 가졌기에 먹고 마시며, 울고 웃으며, 미워하고 사랑하는 모든 것이 나오는 것과 같이 성경의 모든 권면도 그리스도라는 생명만 있다면 다 되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체성, 곧 우리 삶의 목적과 의미를 구하는 것이 기도고, 근신은 그것을 알기 전까지 경거망동하지 않는 것이니, 곧 그리스도의 본성이 자기 삶의 근본이 되면 그것으로 살면 되는데 아직 그 생명이 없거나 어린데 마냥 설치면 어린 아이와 같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렇듯 목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그 목적대로 사는 때라 무한하지 않음을 우리 육신의 수명과 한계에서 보니 항상 마지막과 같이 성실히 주의 생명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어서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시는 것들,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 같이 하고,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는 것이 하라고 하는 것 역시 베드로 사도의 말씀 그대로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말미암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씩 파편화하여 지키려고 할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시도는 생명이 없는 이들이 하는 짓입니다.


사람과 로봇이 다른 것은 사람은 그냥 나기만 했는데 사람의 모든 행위를 할 수 있으나, 로봇은 각 기능별로 설계되고 만들었기 때문에 설계되지 않은 기능은 없는 것처럼, 사람도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은 성경의 모든 것을 다 행할 수 있지만, 성경을 읽고서 하나씩 지켜나가려는 사람은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교회에서 세례 문답을 하고 세례 받고 교회에 다니니 자신들이 다들 거듭난 것인 줄 알고 살기에 성경을 지킬 수 있겠거니 생각하겠지만, 미안하게도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적당히’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신앙은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나는 이것은 되는데 저것은 잘 안 된다.’고 말하는 상황이라면 로봇과 같은 상태인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자신의 신분이나 신앙의 여정을 다 정리하고 자신이 아직 거듭나지 못했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 봉사하는 것을 하나님이 하시는 것과 같이 하라고 했다는 것은 그럴 수 있고, 그래야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나 위로 가서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가진 관념처럼 사람에게 어떤 명령을 던져 주고서 잘 하나 못하나 살피고 심판하고 평가하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의 권면을 보면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 그대로의 권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생령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을 표현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니, 당연히 이 육신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영을 표현하는 것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베드로 사도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육신 가진 인생들에게 하나님과 같이 말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라고 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존재하게 된 목적대로 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앞서 이야기 한 로봇과 같이 성경을 지켜내려고 하다 보니 하나님처럼 말하라고 하니 목으로 쇳소리를 내며 기도하고 말하기도 하고, 봉사를 하라고 했고, 그러면 상급을 준다니 금도끼, 은도끼를 바라는 욕심 많은 나무꾼과 같이 자기 안에 봉사할 본성이 없는데 억지로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하나님과 같이 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자신들이 생각한다고 그렇게 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호박에 줄 치고 수박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습니다.


말은 생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같이 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있고서 말을 한다는 것이지 언어적인 소리를 낸다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베드로 사도의 권면대로 하나님과 같이 말하려면 자기 안에 하나님의 본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하나님의 본성이 없는데 하나님과 같이 말하려는 모든 것이 노릇이고 외식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신다고 하니 등을 밀어주거나 손을 잡고 당겨주는 것이나 주사를 맞거나 전기를 공급하는 것과 같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생명의 법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힘’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사람이란 본성에서, 정체성에서 비롯된 힘을 말하는 것이듯,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역시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의로서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사라는 그 행위 자체가 한다고 문제가 되고, 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이유, 어떤 목적을 인하여 하는 것이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봉사를 하는데 그렇게 해야 하니까 하는 것, 그 해야 하는 이유로선 그렇게 해야 하나님이 상을 주시고 천국에 가서 상급을 받는 것들이 들어 있다면 봉사가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즉 봉사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힘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속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하라고 하면 자꾸 하나님의 명령이니 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초점이 다른 문제입니다. 이것은 하라고 하신 명령의 문제가 아니라, 그 속 심령에 하나님의 본성이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이 있어야 그 말씀이 이루어지고 지켜지는 것이지, 행위가 추운 날 교회에서 나왔다는 현수막 걸어 놓고 길에 서서 노숙자에게 밥 퍼주는 봉사를 한다고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봉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하신 기도와 같이 사람들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행위를 하나님과 같은 모양이 되려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니 자신들도 기도해서 하나님의 힘으로 병을 고치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노릇이고 외식인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니 강단에서 성경으로 말씀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이라는 어이없는 괴변을 쏟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고 수고하는 것이나, 하나님과 같이 말하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본성과 생명이 있어서, 행동하는 모든 것이 그 본성을 인하여 행하게 되는 존재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강아지가 나면서부터 개의 모든 본성을 좇아 행하는 것은 개의 본성을 가진 존재로 났기 때문이지 훈련이나 기도와 신념으로 된 것이 아니듯, 하나님이 말하는 것 같이 말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계획을 가지신 그 때부터 있던 것입니다. 사람은 육신을 가지고 있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육신 안에 거하셔서 육신의 삶과 행동의 본성인 생명이 되시는 것이 창조의 뜻인 것입니다. 이는 마치 로봇 태권브이에 훈이가 탑승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조종자가 탑승하지 않은 로봇 태권브이는 그냥 고철이듯, 사람도 하나님의 의가 그 안에 없으면 육신이 의학적으로 제 아무리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같은 것이란 것 또한 이 맥락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이 하시는 것과 같이 말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고 수고하려면 그 안에 하나님의 본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이 말씀을 대하고 행동으로 지켜내려고 하는 것은 파편화된 복음이고, 노릇이며 외식이며, 행위로 의에 이르려고 하는 율법적인 신앙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인생을 살려면 각개적으로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 그것으로 자신이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과 같이 말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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