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7:14-20) 진정한 두려움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미가 Date : 2018. 11. 16. 11:17 Writer : 김홍덕

미가 선지자는 야곱의 수치라고 말한 사마리아와 같은 신앙의 결국은 뱀과 같이 티끌을 핥고 땅에 기는 벌레와 같이 되며 결국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상황이 되었다면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잘못되었다는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생사화복을 쥐고 계시기 때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큰 재앙을 내리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시니 원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우리 삶의 생사화복을 관장하시기 때문에 잘못 보여서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의 생사화복을 가진 것은 당연한 것이고, 피조물의 입장에서는 창조주가 자신을 어떻게 처분하든 하등 관여할 것이 없고, 감정조차 가질 이유나 권한이 없는 것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다면 이 정도는 알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마리아와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생사화복을 쥐고 계시니 자신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지 않도록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조심조심, 그리고 워하시는 것을 어떻게든지 이루어내려고 노력한 삶을 산 것이 하나님을 온전치 창조주로 믿지 못했다는 것임이 들통이 나면서 자신이 하나님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마 지옥도 그와 비슷할 것입니다. 다시 살 수 없는 인생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섰는데 자신이 살았던 삶과 하나님을 믿었던 신앙이 틀린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두려움은 아마 사람의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생 중에도 후회스러운 일을 생각하면 되돌릴 수 없음에 몸서리치는데 인생 전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알게 된다면 그것 자체로 영원한 지옥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는 것은 일생일대의 과업이고 유일무이한 인생의 목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가치관으로 볼 때 좋다고 여기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것에 부가하여 더 좋은 것, 더 귀한 것, 더 성공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는 신앙은 언젠가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의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진정한 두려움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살면서 자신이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알고 크게 두려워하고 몸서리치듯 놀라고 괴로워하며 돌이킨 시간이 있었다면 오히려 큰 복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은 삶은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미가 선지자가 말씀하시는 “나는 여호와(하나님을 존재의 신으로 부르는 것)를 우러러 볼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갈렙이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한 것 역시 같은 것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변심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결 같으신데, 사람이 자기가 가진 의와 기준으로 하나님을 정의하고 대하는 것 그것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존재의 신이신 하나님께 어떤 공로를 드릴 것인지 궁리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의와 정체성에 맞지 않게 하나님을 대하는 것, 그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존재의 신으로, 자기 존재의 창조주로 온전히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해와 기쁨으로 사람을 대하시는 분이 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원래 사람을 그렇게 대하시니 그 하나님의 의에 맞게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 아니라 능력과 힘이 되시는 것입니다. 열조에게 맹세하신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는 하나님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하나님을 그렇게 누리지 못하고, 자기 행실이 행여 하나님을 노엽게 할까 노심초사하며 신앙생활하고, 행여 하나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까 조심하는 것은 신앙적으로 깨어 있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두려움이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하나님을 잘못 신앙하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인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온전히 바로 믿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하신 창조주로 알고, 자기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형상과 성품을 표현하는 형식으로서의 삶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 행실이, 자기 삶의 어떤 모양이 하나님을 진노케 할 것이라는 두려움 같은 것은 없습니다. 


창조주기 피조물을 자기 맘대로 한다는데 그게 무슨 잘못이며, 설사 하나님께서 성경의 모든 약속을 손바닥처럼 뒤집는다 해서 사람이 항변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데, 자기 행실로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실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하는 사람에게 있어 유일한 두려움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을 맘대로 하시는 범주 속에 두시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살도록 방치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무엇을 하지 않아서 하나님이 진노하실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자신을 통해서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방향이 반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그 하나에서도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믿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어떠함을 인하여 하나님이 화를 내시는 것을 두려워하는 신앙이 있고, 하나님의 의가 자신에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염려하는 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결 같으시니 그 하나님의 의가 자신에게 이루어지도록 자기 의를 버리고 있기만 하면 하나님은 전혀 두려운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나에게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행하심이 때로 우리 육신을 곤고하고 또 사망에 이르게 한다고 해도 그게 두려운 것은 아닌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순교를 견디고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자기 삶을 드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행을 하나님께 드리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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