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이라는 것은 보편적으로 사실과 다른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어떤 세계에서 무엇을 사실 혹은 진실인가 하는 것은 기준으로 사실과 진실이 아닌데 그것인양 말하는 것을 거짓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사실 성경이 말하는 거짓이라는 것도 다 이것이다. 하나님의 의와 뜻이 아닌데 하나님의 뜻이라 하고 주여, 주여 부르는 것이나, 본질은 외면한 채 겉모습만 번지러한 것 역시 겉과 속이 다른 거짓의 모습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거짓의 본질을 더 깊이 알아본다면, 그것은 본질과 표현된 것이 다른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내용과 형식이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도 잘 만들어진 동물이나 꽃과 같은 생명체 모형을 보면 하는 말이 “진짜 같다!”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 모형이 가짜라는 것이다. 거짓이라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거짓 그리스도 역시 그리스도의 본질인 생명은 없이 그 모양만 아주 잘 만들어진 모형과 같은 존재를 말한다.


이러한 거짓 그리스도는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질을 알려면 그 본질이 자기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생명의 모형이 가짜인지 아닌지는 그 안에 생명이 있는 존재가 볼 때 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 그리스도 역시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으면 거짓 그리스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이나 거짓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안목은 같은 것이라는 말씀이 된다.


거짓 그리스도를 구분할 수 있으려면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생명에 관한 것이므로 생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들이라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생명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기 안에 있어야 거짓 그리스도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분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거짓 그리스도를 구분하는데 어떤 학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거짓 그리스도와 이단을 구분하는 것에 있어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안에 생명이 없을 때 차선책으로 하는 것이다. 정말로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자기 삶을 주관하는 사람은 거짓 그리스도를 구분하기 위하여 노력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길가다가 강아지와 강아지 인형을 구분하는데 학습이 필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말씀도 같은 맥락이다. 무엇이, 어떤 것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나, 여기저기서 다양한 기적을 가지고 이것이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에 유혹되지 않는 것이나 같은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따로따로 구분하고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보이면 다른 것은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생명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이는 것이 어디 학습이나 연구 때문인가? 그것이 독수리의 본성, 곧 그 안에 있는 생명의 본성 때문이 아닌가?


사람들은 적그리스도, 거짓 그리스도에 미혹될까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하지만 이는 부러워하면 이미 진 것이라는 말과 같이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이미 적그리스도에게 진 것이다. 세상에 강아지 인형과 강아지를 구분하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경계하는 사람이 있기나 하겠는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듯이,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기 안에 있는 사람이 적그리스도, 거짓 그리스도를 구분하지 못할 이유도, 또 그것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단지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심겨지는 것을 위하여 지금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러 가고 계신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거짓 그리스도를 경계하라는 말씀은 거짓 그리스도를 구분하도록 공부하고 경계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이실 십자가의 사건이 너의 사건, 너의 이야기가 되도록 하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사건이 자기 이야기가 되어 자기 안에 생명이 있어 거짓 그리스도를 본능적으로 아는 존재가 되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 재림하시는 일인 것이다. 바로 그 사건,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 안에 재림하시는 사건이 있기 전에 자기가 하나님으로 여기는 가치기준, 그리고 그 가치기준에 따라 자기가 만든 자기의 세상이 다 무너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같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기 심령에 재림하시는 일과, 자기가 정말로 모든 것이라고 여겼던 본질이 아닌 세상이요, 자기가 가진 선과 악의 기준으로 만든 세상이 무너지는 사건과, 또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게 되는 안목과, 연구하거나 경계하지 않아도 거짓 그리스도가 무엇인지 본능으로 아는 사건은 모두 같은 사건이라는 것이다. 마치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이는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은 같은 사건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명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생명이 있으면 그 생명에 맞게 먹고, 자고, 모양이 생기고 하는 모든 것이 아주 여러 가지라도 생명의 본성 그 하나에서 비롯된 것이듯, 하나님의 생명이 자기 안에 있기만 하면 다양한 것 같은 이 모든 일이 한가지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멸망은 먼저 자기가 모든 것으로 여기는 세상이 끝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세상이 끝나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무엇인지, 거짓이 무엇인지 다 알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기가 알고 자기가 의롭고 선하게 여기던 세상이 끝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은 목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 깨달음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에 본질이 그 안에 있어 삶이라는 형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본질과 형식이 하나가 된 거짓 없고 가증하지 않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생명이 모든 사람의 본질과 삶의 의미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신 것임을 안다면 그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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