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일까?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런데 교회에 조금만 다녀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성당과 같이 성경을 경전으로 삼는 신앙을 가졌거나 관찰해 보았다면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신앙적 믿음을 떠나 상식적 논리로도 거짓임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쉬운 예로 사도신경을 신앙고백이라고 하면서 세상일을 걱정하는 것이 그렇다.

 

세상에 악이 관영하니 하나님께서 조치를 취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그렇다는 말이다. 실수도 않고 온전하게 세상을 경영하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의 경영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세상, 아니 온 우주에 없다고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조치해야할 세상의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기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악을 방치하시고 사람들이 어떻게 하시는지 보시는 고약한 하나님을 믿는 것이거나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정체성을 믿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유의 주요 전능하신 분이심을 믿는다면 세상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가치관과 안목만 바뀌면 된다. 세상에 악이 관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세상을 자기 기준으로 보는 죄에 빠진 안목으로 보고 있기에 세상이 악한 것이고, 사람들이 그렇게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악하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들의 세상이 악하다는 것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악하다고 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선악의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서로 바라보며 다투니 세상이 악하다는 것이지 하나님의 세상은 온전한 것이다. 온전한 것을 악하게 보니 하나님께서 악하다고 하시는 것이다. 바꿀 것은 사람이 스스로 먹은 선악의 기준이다. 자신이 가진 선악의 기준으로 세상과 사람을 보는 자신의 가치관만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그게 예수님께서 구원하시는 세상이라는 것을 앞서 설명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가진 그 선악의 기준은 세상적인 가치에서 정립된 선악의 기준이다. 사람의 평안을 헤치면 악이고, 사람이 부유하게 잘 사는 것을 헤치는 것도 악이 된다. 그리고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과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정한 법을 지키는 것이 정의고 선이다. 세상에서의 평안한 삶과 성공이 보장되는 것이 선과 악이라는 것은 높은 것을 추구한다. 높은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보는 세상의 가치관은 당연히 귀한 것은 높은 곳에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 가치관은 하나님의 아들 역시 세상의 가치로 높은 신분과 지위와 능력을 가지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 이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를 졌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물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이 낮고 낮은 땅에 오셨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 낮아진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높아지기를 구한다. 그것은 하나님 아들이 십자가를 졌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이용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그 가치관은 성경을 지키는 것에도 동일하다. 하나님 아들이 세상이 귀하게 여기듯 높고 좋은 것을 누리는 존재로 여기기에 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지킨다는 것 역시 세상에서 높고 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세상은 본질이 아니라 나타난 것이고 형식이며 겉껍데기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지킨다는 것도 눈에 보이는 육신의 행위로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그런 사고방식과 가치관은 교황이나 목사 그리고 신부를 대하는 모습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삶의 모양이 종교적이라는 명분으로 그들은 항상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성경대로 산다는 것은 높고 귀한 것이라고 사람이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업이 종교적이기에 눈에 보이는 삶의 형식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성경적이기에 그들은 종교적으로 높임을 받는다. 그것은 단지 그들의 교만 때문이 아니라 성경대로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높아지고 완전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그 생각이 종교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성경대로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은 세상으로 보냈다는 것에서 모든 말씀의 행간에는 낮아지는 것이 본질임을 말씀하고 있다. 당연히 하나님의 그 마음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은 십자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성경을 다 이루는 것이고 다 지키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성경을 지킨다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세상 가치로 완전해지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낮고 낮은 십자가를 지시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26:54)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19:30)

 

이같이 예수님께서는 낮고 낮은 십자가를 지시면서 십자가를 지는 자신의 모습이 곧 성경을 이루고 지킨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지키며 살고 성경대로 산다는 것을 세상 가치로 완전하고 높아지는 것이라고 본다. 사람이 예수님이 보이신 말씀을 믿지 않고 생각지 않기 때문에 정반대로 보면서 성경을 지키려하니 성경은 지킬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하나님께 자신이 세상의 가치로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은 자신은 아직 높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이 성경을 지킨다는 것은 아주 고귀하고 완성된 것이며 세상의 가치로 아주 높은 수준의 삶이라고 생각하니 당연히 성경대로 사는 것은 높고 높은 예수님이나 가능한 것으로 인식한다. 낮아지신 예수님을 세상의 가치로 높은 곳에 둘 뿐 아니라 낮아지신 예수님의 이름과 능력을 빌어 세상에서 높아지려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낮고 낮은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성경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말씀대로 성경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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