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의 회복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육신을 보는 성경의 관점 Date : 2019. 12. 25. 04:00 Writer : 김홍덕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만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타락했느냐?’의 문제가 있다. 그런 타락이 없다면 굳이 아들을 이 땅에 보내는 것과 같은 구원의 역사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왜 이렇게 곤란한 문제가 발생했는지 늘 궁금하다는 것이다. 아담의 타락을 예견하신 것인지, 아니면 부추기셨는지, 선악과는 미끼였는지, 이런 문제들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한 아담이 왜 타락하고, 그로 인하여 아들을 보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알려면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실 때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자 하신 최종적인 목적물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스릴 존재”인 사람인 하나님 창조의 최종적인 목표 곧 하나님의 생각이 육신과 하나가 된 존재는 바로 그리스도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나타내시겠다고 하신 존재는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냥 단순하게 의학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이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자 하신 사람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눈으로 보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의가 자기 본성이 된 사람을 창조하시고자 하신 것이라는 의미다. 그리스도가 목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사람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따라서 아직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첫 번째 아담의 모습으로 창조된 것은 맞지만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달성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나누어서 설명한다면,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있고, 그 존재들 중에서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 있어 하나님의 본성이 자신의 본성이 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본성이 자기 생명이 되었다는 것은 아들이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의가 자기 삶의 본성이고, 삶의 목적인 사람은 육신으로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아들이다. 아버지의 의가 육신이 되어 살아가는 존재가 아들인 것이다. 아들이 있다면 아버지가 있는 것이고, 아들이 살아가면 그 모습 속에서 아버지의 성품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인 것이다.


첫번째 아담 - 육신만 사람 - 구속의 대상이자 창조의 대상

두번째 아담 - 하나님의 의가 본성이 된 사람 - 창조의 목적 - 그리스도


따라서 사람은 육신이 사람인 존재가 있고, 하나님의 의가 본성이 되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창조목적이 본성이 된 사람이 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첫 번째 아담, 두 번째 아담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여기서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당연히 첫 번째 아담의 모습이다. 즉 구속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습은 육신으로는 사람으로 났지만 아직 하나님의 의가 자기 본성이 되지 않은 모든 사람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속은 아담의 범죄에 따른 후속 조치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창조의 과정이며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인 것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먼저 우리 자신이 선악과를 먹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속이 모든 인생들을 위한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정작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른다. 하나님의 구속이 모든 인생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모든 인생이 죄인이라는 의미다. 모든 인생이 자기만의 선과 악의 기준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각 개인이 그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인생을 위한 구속이라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섭리이며 세상을 경영하시는 계획이라는 것이 자기 안에 없다면 말만 모든 사람을 위한 구속이라고 뇌까리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 모든 구속은 자신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선악과를 먹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아담이 먹은 것이 유전된 것으로 치부하는 한 이 구속은 자신에게 은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이 왜 그렇게 자기 죄를 자백하고 시인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작인데 이 시작이 없으면 교회에 1,000년을 다니고 예수를 10,000년 믿어도 소용없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속은 사람 자신이 선악과를 먹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자신이 삶에 만족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육신의 삶에 만족하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회개’란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만족은 육신에 대하여 하나님과 동일한 관점을 가지는 것에서 비롯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육신 가진 삶을 자기의 선악 기준으로 보지 않는 것이 만족의 동산에 거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먹기 전 아담처럼. 그리고 그렇게 사람이 회복 아니 창조목적 안으로 온전해지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죄는 우리가 범하고 벌은 예수님이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인생들이 무엇을 자신의 존재 목적으로 삼을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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