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신 것은 밝음이 있으라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밝음이 있으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라고 하신 것이다. 지금의 본문은 이어지는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이라는 말씀까지 하나로 연결된 말씀이지만, 이 <빛>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면 골로새서의 말씀 뿐 아니라 성경 전체를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분명하게 포스팅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빛>은 밝음이고 시작이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2)’ 창세기의 말씀은 천체물리학적 시작이나 과학에서 말하는 빛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을 연구하고 있는 바보 같은 ‘창조과학회’도 있다. 어떤 세계의 시작이라도 내가 인지할 때 태초가 되는 것이다. 내가 나지 않았다면 이놈의 세상이 창조된들 무슨 의미란 말인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하신 것은 <나에게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게 되었다>라는 의미가 없다면, 지구가 어떻게 생겨 먹었던, 과학과 성경이 어떤 관계가 있던 아무 상관없는 것일 뿐이다.


대학 2학년 때, 당시에 있었던 대학생 병영 체험의 일환으로 전방 25사단에서 일주일간 보초를 서로 갔었는데, 그 밤이 얼마나 어두운지 바로 앞에 사람이 있어도 보이지 않았다. 철모 뒤에 있는 야광 스티커가 아니면 앞에 가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때 사람 눈에 빛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정도로 어두웠다. 즉 빛이 없었다. 빛이 없는 곳에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할 때 마다 부딪히고 들이받고 할 뿐이다. 설사 그것이 내가 늘 생활하는 방이라 해도 빛이 없다면, 내가 늘 사용하던 물건들에게 조차 나는 해를 입을 것이다. 빛이 없으면 그렇게 된다.





그래서 빛은 밝음이다. 단순한 조명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이치에 대한 밝음이고 세계에 대한 밝음이다. 컴퓨터 세계에 어두우면 컴맹이라 하는 것이 그래서 그렇다. 그러므로 빛 안에 있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앞서 어두움 중에서는 모든 것과 부딪힌다 했다. 그것이 내가 늘 사용하는 것이라 해도 말이다. 세상 사람들의 모든 다툼도 어두워서 그렇다. 그들의 세계 안에는 그 세계에 대하여 인지할 수 있는 밝음이 없기 때문에 늘 다툰다. 빛이 없어서 그렇다.


빛이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인지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어두운 방에서는 선풍기에도 부딪히고 책상에도 부딪힌다. 그게 설사 자기 방이고 늘 사용하던 자기 물건이라도 빛이 없으면 그렇게 된다. 반면에 빛이 있으면 모든 것을 인지하고 모든 것을 그 용도에 맞게 다스리고 운용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세상을 다스리라 하신 것이다. 즉, 빛 가운데 있으면 모든 것의 정체성이 분명해지므로 그 정체성에 맞게 운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생명이 있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빛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밝음 안에 있어서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게 하시고, 세상에 있는 모든 정체성을 알아 다스리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가 세상의 어떤 요소에 부딪히거나 상하거나 해를 당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마치 불 켜진 방에서는 어떤 것에 부딪힘 없이 다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내가 큰 교회에 있을 때, 빛이 이런 것이라 가르쳐 주는 이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르쳐 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들 어두우니까? 만약 밝다면, 교회 안에 다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늘 싸우고 있다는 것은 어딘가에 부딪힌다는 것이고, 서로 부딪힌다는 것은 둘 다 어두움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둘 중 하나만 밝아도 부딪히지 않을 터인데 말이다. 그래서 목사와 장로들이 싸우는 것이다. 서로 어두워서, 그것도 모르고 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간구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행하게 하시고>라 간구했다. 이는 바울 사도와 함께하는 사도들과 골로새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밝은 빛, 하나님의 세계 안에 두신 그 빛의 밝음을 좇아서 그 가운데 행함으로 모든 이치를 알아 다툼과 분쟁과 갈등과 의문이 없는 삶 가운데 살기를 간구하신 것이다. 그것은 먼저 간구한 기쁨으로 견디는 것이나, 선한 일에 열매 맺게 하시는 것이나, 하나님을 아는 것, 그 모든 것이 밝음 가운데 깨우쳐진 삶 가운에 있기를 간구하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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