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는 성령의 열매를 이야기하기 전 먼저 육체의 일을 열거했다. 누구라도 죄로 여기는 일들을 육체의 일이라 명시했다. 그러나 정말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열매>라는 단어다. 열매는 전적으로 생명의 속성,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체는 일이고, 성령은 열매라고 한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성령의 열매와 육체의 일은 반대다. 하지만 이는 서로 대칭적인 반대라기보다 “0” 아니면 “1”이라는 개념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 그리고 둘은 병립하지도 않는다. 아니 그럴 수 없다. 그리고 바울 사도의 표현대로 열매와 일은 근원적으로 다른 개체이자 개념이므로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도 없다. 이것은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인정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사실 대부분 신앙인은 무의식적으로 왔다 갔다 한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하면서 육체의 일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그렇고, 생명이 있으면 자연히 열리는 열매를 맺으려 노력하는 신앙이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이라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개념도 틀렸고 가능하지도 않다. 성령으로 나서 살면 열매는 자연스럽게 열린다. 그게 열매다.

 

육체의 일은 주체도 일이고 이익도 육신이 얻는다. 반면에 열매는 본성이 주체고 열매 자체가 얻는 이익은 없다. 육체의 일은 결국 육체의 욕심을 이룬다. 음행으로 얻는 쾌락을 육신이 느끼고, 육신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아 화를 낸다. 말 그대로 썩어질 육체가 행하고 육체가 결과를 얻거나 미치는 건 모두 육체의 일이다. 하나님께 구한다고 해도 육신의 평안과 복락을 구하는 건 육체의 일이란 의미다. 물론 육체의 일을 구하는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다.

 

바울 사도는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했다.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은 자아 밖에 계신 성령을 따라가는 것이나, 자아 밖에 계신 성령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신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본성대로 사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이라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선언한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니라(갈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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