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전하고 있는 바울 사도는 자신이 율법을 매우 중요히 여기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소환하여 율법으로 의로워질 수 없다는 것을 전한다. 그리고 그 자신의 경험을 일단락하면서 자신이 율법을 떠나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을 십자가에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히고 이제 육신으로 사는 것은 믿음을 인함이라는 말로 정리한다.

 

바울 사도의 이런 고백은 사도의 모범적인 모델로 박제할 일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바울 사도와 동일한 신앙, 동일한 경험을 가진 존재가 되어야 한다. 바울 사도가 자신의 일을 전한 것은 자신이 전한 말씀을 듣는 이들 역시 자신과 같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행 26:29)

 

그렇다면 우리도 바울 사도의 경험과 같이 율법을 좇던 삶은 십자가에서 죽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남은 육신의 삶을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성경을 지키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율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하고 또 믿음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율법이라는 것이 능동적이며 자신이 바라는 것을 위하여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믿음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인생으로서 사람의 존재 목적이자 정체성임을 순종하는 것이라는 것도 앞서 설명했다. 아울러 행위는 능동적이며 믿음은 수동적이라는 것까지 강조하였었다.

 

이와 같은 율법과 믿음에 대한 개념은 기존의 기독교 안에 있는 것과 차이가 있고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이는 오늘날 기독교가 하나님을 믿어 세상에서 이긴 자가 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천한 사형수가 되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어서 세상에서 이긴 자가 되려는 모순을 벗지 않으면 자신이 율법 아래 있음에도 오히려 그것이 믿음 안에 있다는 착각을 벗을 수는 없다. 그것은 상당히 불행한 일이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는 것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설명함에 있어 먼저는 자신의 경험으로 볼 때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이어서 성령과 율법, 약속과 율법 등의 순서대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 곧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 설명한다.

 

어떻게 보면 행함으로 의롭게 될 수 없다고 시작해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지를 설명하는 모순적인 전개 같지만 행함으로 의롭게 되려는 것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육체 가운데서 산다는 말이 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의로운 행함을 자아낸다는 것을 온전히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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