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복음 혹은 의로워지는 법이 행함에 있는지 아니면 믿음에 있는지에 대하여 기록한 갈라디아서의 초반부는 바울 사도의 개인적 입장과 경험을 바탕으로 율법이 아니라 복음이며, 행함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먼저 설명하고 있다. 의로워지는 것은 율법이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그의 개인적 경험의 시작은 바로 자신이 어떻게, 또 왜 사도인지를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모든 서신의 시작을 하나님 앞에 의롭고 또 사도가 된 것 자체가 행함이 아니라 은혜와 믿음을 인한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한다. 율법과 복음에 대한 갈라디아서 역시 여느 서신서와 같이 자신이 하나님의 사도라는 것을 선언하면서 시작한다. 이러한 상용적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바울 서신의 첫머리를 성경을 학문으로 보는 사람들은 당시 바울 사도의 사도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바울 서신의 시작마나 나오는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사도라는 선언은 단순한 자신의 입장과 정체성에 대한 선언이 아니다. ‘의롭게 된다는 것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의 뼈대다.

 

만약 육신의 어떠함, 곧 신분이나 이력 그리고 공로가 있어야 사도라고 할 수 있다면 예수님과 함께 한 세월이 없고 오히려 예수를 핍박한 전력이 있는 바울은 사도가 될 수 없다. 그런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가 되었다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증거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대인이라는 율법적인 신분이나 행위의 공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의로워진다는 것을 전하는 바울이 사도가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의 증거다.

 

오늘날은 바울을 당연히 사도로 인정한다. 성경을 보는 대부분의 관점, 그것이 학문이든 묵상이든 간에 바울이 사도라는 것은 수학의 무정의 용어처럼 고정된 상태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사도로서의 정체성을 선언하는 바울의 말은 당연히 사도인 그를 사도로 인정하지 않는 당시 사람들의 편견이라는 관점이 중심이 되어 해석된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당시의 바울은 사도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그가 스스로를 사도라고 말하는 것은 사도가 어떤 특권이어서가 아니라 사도가 되는 것이나 구원이나 의로워지는 것이나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그 은혜를 순종하는 믿음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단순히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바울 자신을 사도로 인정한다는 것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늘 선언하고 말씀을 전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는 것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바울 사도의 말씀을 전하려면 행함으로 이룬 신학적 자격과 그 자격을 가진 자로서의 공로가 있어야 전할 수 있다. 육신으로 사도가 된 것도 아니고, 실제로 사도가 될 법한 육신의 공로가 별로 없는 바울은 무정의 용어처럼 사도로 인정하는 오늘날 오히려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을 전하려면 신학적 자격이나 성령의 역사로 오인하는 신비한 능력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교를 하려면 신학이라는 학문의 수고, 그 학문 이수를 자격으로 한 교회에서의 공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신앙과 교회의 교리인 것이 그 증거다. 너무나도 분명하게 신학적 업적은 육체로 의로워지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는 자리에 이르려면 얼마나 많은 경쟁을 이겨내야 하는지 모른다. 신학생일 때는 동료들보다 더 많이 공부해서 시험에서 이겨내고, 졸업해서 교회에 전도사로 가서는 많은 업적을 쌓아야 부목사가 되고 다시 그 공로를 인정받아 담임목사가 되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세계다. 경쟁에서 이겨내어 높고 좋다는 자리로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육신의 공로다.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을 전하고 설교하려면 신학이라는 허들을 넘어야 하도록 해 놓고 그것을 교리와 정통적 신앙의 가치로 삼는 모순에 빠져있는 것이다. 신학과 오늘날 신앙은 무엇이 행함인지, 무엇이 믿음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증거다.

 

갈라디아서를 시작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의 아버지로 말미암아 된 사도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갈라디아서가 전하고자 하는 본질적 내용인 행함이 아니라 믿음이 의롭게 한다는 말씀의 주제 위에 있다. 바울 사도가 의롭게 되는 것은 행함이 아니라 육체라고 전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이 사도가 되는 것 역시 행함이나 육신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순종한 믿음이다. 만약 사도가 되는 자격이 신학을 이수하는 것이나, 예수님과 일정 기간 같이 말씀을 전하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라면 그렇게 된 사도가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의로워지는 것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시작되는 것이다.

 

바울 당시의 사람들이 그랬다면 오늘날은 신학이나 교회에서의 업적 혹은 40일 금식 이력과 같은 능력으로 착각하는 공로로 의로워지고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 그릇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믿는 믿음이 시작된다. 당시의 사람들이 자신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아서 혹은 자신이 전하는 말씀이 사도의 말씀이기에 믿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못하면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것 또한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학이 있어야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굳어 있다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행의로 의롭고 더 거룩하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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