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성경이야기' + 89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Category : 일상 속의 성경이야기 Date : 2018.10.20 09:00 Writer : 김홍덕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유명한 성경말씀이다. 하나님을 믿고 그 안에 있으면 세상을 살면서 겪는 어떤 문제라도 자기가 꿈꾸는 대로 이룰 수 있다는 말씀으로 여긴다. 그럼 과연 이 말씀이 그런 뜻이 맞을까? 하지만 이 말씀에는 대 전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이다. 따라서 그 밖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궤변적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궤변이 아니다. 성경을 자기 맘대로 재해석 할 것이 아니라면…


이 말씀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한정된 것이라는 말씀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말씀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내 생각과 삶의 모든 것이 내게 능력을 주시는 그 분 안에 있다면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때로 이 말씀을 가지고 믿지 않는 사람들의 역습을 받을 때가 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이냐?‘라고. 그러면 당연하다는 듯 ”그런 뜻은 아니다“고 답한다. 그럼 대부분의 경우 서로 양해(이해가 아님)한 듯 그쯤에서 그친다. 그것은 <모든 것>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니다. 사람의 말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의 핵심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전제가 있다면 그 전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의 핵심은 어디까지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본질이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 도끼를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금도끼 은도끼를 얻을 심산으로 이 말씀을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능력 주시는 자 곧 하나님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시는 이 말씀이나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이나, 내가 저희 안에 저희가 내 안에 있다는 말씀이 다 같은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심이지, 금도끼와 은도끼에 사심이 가득한 욕심 많은 나무꾼과 같이 세상 살면서 어려운 일 만나면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다 들어 주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기도를 하려면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즉 그 분의 의에 맞게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심을 잊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러면 무엇이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는 것인가?


성경 전반에 있어 안에 있다는 것은 어떤 공간 안에 있다는 것이나 계모임이나 단체 안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구원이라는 것이 사람이 손으로 만든 물리적 교회 대문을 들락거리는 것 정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게 십자가를 진 것이라 여기는 바보들이라면 몰라도.


안에 있다는 것은 같은 생명 안에 있다는 것이다. 고양이를 배에 태워 태평양 한 가운데 가도 고양이 안에 있는 것과 같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다는 것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와 본성과 생명이 같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졌다는 것은 그 생명의 유전자가 그리스도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그 사람 먹어도 그리스도(a christ)요 죽어도 그리스도 인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즉 그리스도의 생명으로서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이 말씀을 가지고 자기 삶에 응용하려면 먼저 능력 주시는 자 안에 들어가는 것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것도 없고,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도록 그 의가 같지도 않고 오히려 자기 의로 세상을 살면서 만나는 문제, 자기 꿈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문제를 다 해결 할 수 있다고 여기며 기도하는 자들은 그저 “주여! 주여!”하는 자, 회 칠한 무덤과 같은 자일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하는 자가 되고 싶다면 이 말씀을 자기 꿈을 이루어주시는 희망적인 말씀으로만 보지 말고 먼저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속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의와 생명이 같은 것이며, 같은 유전자 곧 생명의 본성을 가진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즉 생명으로 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 생명 안에 속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람 같은 로봇이라도 나지 않으면 그냥 로봇이듯, 나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난 사람, 하나님의 의가 자기 본성이 된 사람이 될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삶의 모든 것은 능력 주시는 자의 의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모든 것이 능력 주시는 자와 같은데 그 안에 못할 것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