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문둥병 (1)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치유 Date : 2015. 2. 4. 15:45 Writer : 김홍덕

의외로 신약 성경에는 문둥병에 대한 치유 기록이 많지 않다. 마태복음 8장, 마가복음 1장, 누가복음 5장에 기록된 온 몸에 문둥병이 든 사람을 치유하신 기록과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열 명의 문둥병자를 치유하신 기록 정도이다. 이 문둥병은 나병이라고도 하는데 예전에 많은 봉사활동의 대명사처럼 여기던 소록도에 많은 환자들이 모여 있기도 했었다.


이 문둥병은 몸의 감각이 없어지는 병이다. 그래서 몸이 썩어서 떨어져 나가도 그 고통을 알지 못하는 병을 문둥병이라고 한다. 근데 성경에서 의외로 이 병을 많이 다루고 있는 성경은 레위기이다. 레위기 13장과 14장에서 집중적으로 문둥병에 대한 규례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경에서 이 문둥병을 상세히 다루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문둥병자와 같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문둥병은 자기 몸의 감각이 없어지는 병이라고 한다. 사람들도 하나님의 섭리와 말씀에 대하여 문둥병자와 같이 감각이 없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시기 위하여 이 병에 대한 규례를 많이 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반응을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신앙의 요소이다. 그냥 쉽게 교회에 다니고 말씀 듣고, 또 때로는 금식이다 철야기도다 또 성가대나 각종 봉사로 교회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아니다.


반응한다는 것, 감각으로 느낀다는 것은 먼저 말씀하시는 이가 있고, 그것에 반응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것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다 헛것이다. 8,9년 전에 국내 한 중견 기업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나보다 나이가 3살이나 많은데 직급은 나보다 낮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일 밤 10시까지 일을 했는데, 별로 회사에서 그렇게 인정받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부서가 통합되면서 내가 그 사람의 상관이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밤 10시가 넘게 일을 했다는데, 나에게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사내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일한 것을 보고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한번 보자고 하니까 그마저도 안 된다고 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이 왜 진급을 못하는지 알게 되었다. 회사의 모든 일은 적어도 사장에게는 보고가 되어야 하고, 그보다 앞서서 사장과 경영진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정리하고 관리하는 것이 관리자인데 그 사람은 자기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만 열심이었다. 그것은 회사의 경영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문둥병인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이 그러하다. 오죽하면 교회 안에 있는 유머로, 어떤 사람이 한참을 기도하고 일어서는 뒤에다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야! 나도 말 좀 하자!” 하신다는 이야기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도다.(말 1:10)


라고 하셨고, 예수님께서도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눅 7:32)


라는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다. 이러한 말씀을 하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았거나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멀리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열심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싫어하셨다. 그와 같이 요즈음 말로 <고객 만족>이 되지 않는 모든 <열심>은 다 문둥병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에는 무감각하고 반대로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라 여기는 것에 열심이었던 것이다.


중풍 병이라는 것이 머리의 생각이 몸에 전달되지 않는 것이고, 귀신 들린 것은 몸은 멀쩡한데 머리의 생각이 빼앗겨 버리는 것이라 했다. 즉 중풍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우리의 삶에 반영이 되지 않는 것이고, 귀신 들린 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그 삶을 주관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둥병은 하나님께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즉 온 세상을 통해 표현하신 하나님의 계시를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문둥병인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통하여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순전하게 함축된 곳이 십자가이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그것에 반응하지 않고 자기가 생각할 때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예수를 믿는 것이 바로 문둥병인 것이다.


그것을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기도한다는 것이 다 문둥병자의 모습일 수 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온 세상을 통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표현하셨는데,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고 그것을 알려 달라고 한다는 것은 이미 표현해 놓으신 하나님의 뜻을 느끼지 못하는 문둥병자인 것이다. 무리한 접근인 것 같지만,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형편, 즉 형식이요 행위와 소유의 어떠함에 대하여 그 뜻을 묻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께서 온 세상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온전히 밝혀 놓으셨는데, 시간차에 따른 육신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것에 하나님의 뜻을 논한다는 것은, 어떤 세계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논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대부분의 내용들이라는 것이 어떤 행동 양식과 방법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존재의 하나님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 6:31) 하신 것이다.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것은……. 즉 육신이 사는 형편과 방법에 관한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존재의 하나님이고, 방법에 관한 것을 해결하시는 분도 아니실 뿐 아니라, 그러한 것은 이미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이미 다 주신 것이요, 또한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이 그러한 것을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알고서 살아가면 정작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목표에 대하여 감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문둥병인 것이다. 이 문둥병이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곳이 바로 율법에 관하여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인으로 드러나게 하시기 위하여 주신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지킴으로 의인이 되려고 한다. 즉 율법을 주신 목적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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