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에 들지 못하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은 계속 이어진다. 이는 후렴까지 이어지는 잔소리가 아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에 속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히브리서는 복음을 받았으나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언급한다.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말씀일 것이다.


4장에 들어가면서 히브리서는 안식과 약속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안식은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앞서서 계속 설명한 것과 같다. 안식이란 목적이 이루어진 온전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목적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한 약속과 같은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약속은 계약적 성격이 아니다. 계약은 동등 혹은 유사한 존재 간에 체결하는 것이다. 성경을 잘 지키면 육신으로 사는 동안 하는 일이 잘 되고 건강하고 부유한 축복을 주고 죽으면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천국에서 주겠다는 계약이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두고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사람들과 계약할 사항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말씀이 바로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임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무슨 유익이 있다고 100% 온전하게 지키지도 못하고 일부만 지키는 사람들과 말씀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계약을 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사람 중에 누가 이런 불합리하고 자신에게 유익 없는 계약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사람 만드신 하나님도 그러실 리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이다. 이 관계에서 약속은 오직 하나님만 정하실 수 있다. 만드시지 않으면 약속도 없다. 사람이 약속 혹은 계약의 당사자나 “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신 모든 약속은 사람의 동의와 반대급부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생각과 의와 뜻과 목적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피조물이 하나님의 의에 순종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사실이 존재한다.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든 아니든 간에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이미 성립되었고, 항상 존재하고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자신들이 교회에 나가면 그 보답으로 하나님께서 약속을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존재 the Human이 존재하게 된 그 순간부터 아니 그것을 계획하신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약속을 하셨고, 하나님께서 사람이란 존재를 경영하시는 동안 항상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약속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야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는 말씀이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말씀이 이해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 안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고 그 마음을 성령께서 잉태케 하시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는 거듭난 생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것과 그것이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무조건 이루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제 아무리 하나님은 신실하시니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목숨을 걸고 믿어도 하나님의 약속은 그런 것이 아니다. 특히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인생의 존재 목적과 의와 뜻이 아니라, 이 생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육신의 삶이 다른 사람보다 형통하게 되는 것을 약속이라 믿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는 다시 안식으로 설명한다. 약속의 본질이 안식이라는 것이다. 안식은 앞 장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수고하지 않는 것이고 목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목적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새우신 뜻이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사람에게 이루어진 것이다. 약속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하신 의와 뜻이라는 것을 안다면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은 온전한 안식이라는 것도 분명하게 보일 것이다. 그건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면 당연히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는 복음을 들었지만 유익되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유익되지 못한다는 것은 사람을 쉬고 안식하게 하면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 만물과 심지어 아들까지 보내서 그 음성을 들려주셨는데, 그리고 세상 곳곳에 성경이 배포되어 말씀하는데 그것이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려고 오늘도 내일도 계속 수고하고 노력하고 있는 오늘날 신앙인들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복음이 유익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를 안식하게 하는 것이다. 이 안식은 몸이 쉬는 것이 아니다. 안식교와 같이 안식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서 돌 판이 빛난다는 것과 같은 더더욱 아니다. 인생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뜻 안으로 들어가므로 목적 안에서 온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내부에 계속 폭발이 일어나는 가혹한 환경에 처한 자동차 엔진은 뜨거운 폭발이 계속되지만 그것이 엔진에게는 안식인 것이다. 쉬는 것으로 치면 폐차장에 있는 엔진이 더 안식일 것 같지만 엔진의 존재 목적으로 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엔진으로 설명하면 이해하면서도 자기 육신이 편해지는 것이 안식이라 생각하는 것은 어두운 자들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렇게도 육신의 평안과 안식을 안식과 복으로 여기는 것은 정말로 곤고하다. 강퍅하다는 말이 오히려 약할 지경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세상에 유효하지만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유익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안식은 당연히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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