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은 온 세상과 사람이라는 육신 가진 존재로 표현된 하나님의 의(義)고 그것을 보고 또 무엇보다 하나님의 의를 가장 온전히 표현하신 예수님을 보고서 하나님의 의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므로 하나님의 그 모든 음성이 자신의 생명이 되어 자기 육신으로 표현하는 삶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말씀이 되는 것이라고 히브리서는 말씀하면서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과 의를 듣지 않으면 안식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몇 줄 안되는 문장으로 요약된 이 말씀은 사실 성경 전반을 요약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마음과 그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고 표현하며 대변한 사도들의 간절함에도 이것을 보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 자기의 말씀이 되지 않는다면 사실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신의 의가 무의미해지는 것에 진노하신다.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의 의가 피조물에게 의미가 없어지는데 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주가 진노하는 상황 아래에 있는 피조물이 평안을 누릴 법은 더더욱 없다.


이는 히브리서의 기자가 간절함으로 권면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놀랍게도 하나님의 의가 자기 본성이 된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일에 간절하게 임한다는 것이다. 생명체가 그 생명의 본성을 따라 사는 것이 얼마나 간절한지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음성이 말씀이 되고 또 그 말씀이 자기 육신 곧 육신의 삶이 된 사람에게 그 말씀대로 살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생명체가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필사의 수고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단순한 개인 신앙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이런 생명의 본능이 없으면 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이 자기 본성을 나타내는 것에는 그 본성을 알아줄 수 있는 동일한 생명을 찾는 간절함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명으로 난 존재는 같은 생명을 찾는다. 하나님의 의로 거듭난 그리스도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찾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를 깊이 생각하기 시작한 사람은 음성이 말씀이 된 사람을 찾는다. 반대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음성을 듣고자 하는 이들을 간절히 찾는다. 그 간절함들이 모여서 공동체와 나라가 된다. 그렇게 교회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구원 받을 이름이 예수 외에 받은 바가 없듯, 교회가 되는 것도 이러한 생명의 법 이외에 주신 것이 없다. 세상의 방식대로 경쟁하고 시험 쳐서 자격을 얻어서 세상에서 성공한 장로 두어 명과 함께 할 때 교회가 된다는 생명 없는 교리로 교회가 된다고 생각하는 그 세계는 하나님이 주신 법이 다스리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하나님을 믿는 세계이고, 세상의 가치와 권세를 좇는 무리들일 뿐이다. 다른 것 볼 것 없다. 그렇게 모인 자들이 무엇을 기도하고, 무엇을 바라며, 무엇을 은혜와 영광으로 아는지를 보면 된다. 그게 세상의 가치 기준에 의한 성공 아닌가? 그럼 게임 끝난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그런 교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세상에 그런 교회만 남았다면 이 세상은 진작에 멸망했을 것이다.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가 하나도 남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경영하실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의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이 세상에는 온전한 교회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하나님께서 세상을 기쁘게 경영하시는 것이다.


온전한 교회는 생명으로 세워진 교회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것이 말씀이 된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그 말씀을 나누는 곳이 바로 교회다. 그리고 음성을 듣고 그것이 말씀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소망하는 곳이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법에 대한 음성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이신 대로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육신 곧 삶이 되는 것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의 소망이고, 또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들이 그 소망을 가진 자들에게 음성이 말씀이 되는 본을 보이는 곳이다. 권면은 말씀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음성이 말씀이 된 사람들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삶이 된 사람이다. 그들의 권면은 말에 있지 않다. 하나님의 음성이 자기의 말씀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있어 권면은 음성이 말씀이 된 삶이다. 그것을 서로 보고 그 삶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듣는다. 즉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이 서로 권면하는 것이다. 그렇게 같은 생명의 삶을 알아볼 수 있고, 서로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같은 생명을 가진 증거다. 그리고 생명이 같아야 형제다. 그리고 이 생명을 처음 보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이 맏아들이신 것이다.


무엇보다 이 법에서 벗어나면 서로 형제도 아니요, 생명도 아니다.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그것과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도 생명이 없는 것이고, 십자가에서 보이신 것이 아닌 것을 추구하고, 그 추구하는 소망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기를 바라는 것도 예수님과 다른 생명이며, 십자가에 육신을 드리심으로 말씀을 보이신 예수님과 달리 교훈이라며 찌르는 말과 지적질로 서로를 대하는 것은 예수님과 형제가 아니다. 이런 것들이 근간이 교회는 무늬만 교회일 뿐 그냥 종교 단체일 뿐이다. 그리스도의 형제로서의 권면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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