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통독

Category : 김집사의 뜰/덕이의 신앙 이야기 Date : 2013. 9. 1. 10:38 Writer : 김홍덕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덕이는 성경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경퀴즈 대회에 참석한다고 읽거나 아니면 신약은 부분적으로 반복해서 제법 읽었지만 이른바 통독은 한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덕이는 고2가 되면서 한 해 동안 성경을 다 읽어보자고 생각을 하고 읽기 시작했다.


창세기 부터 시작해서 계시록까지 덕이는 성경을 한 해 동안 다 읽는데 성공했다. 레위기를 읽을 때는 인내가 무엇인지 배우는 듯 했다. 역사서를 읽을 때는 왜 반복된 내용이 자꾸 나오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순서도 헷갈렸다. 어느 왕이 뭘 했느냐 하는 것 보다. 이 놈의 족보가 어떻게 되는지 헷갈렸다. 그래도 억지로 읽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책이 의도하는 바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읽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덕이가 성경을 읽는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성경 통독을 한 사람> 그 훈장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누구를 해롭게 하고 얻는 것도 아니다. 어떤 각도에서는 그렇게라도 성경을 한번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도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는, 하지만 교회에서는 은근히 훈장 노릇을 하는 <성경 통독한 사람>이라는 훈장을 달고 싶었던 덕이는 꾸역꾸역 읽어 나갔다. 스스로 훈장을 달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기 전에 성경을 끝까지 읽는 것에 성공을 했다.


얻은 것도 많았다. 그 얻은 것은 한마디로 의문들 뿐이었다. 머리 속에서 뭔가를 새롭게 알게 하는 것은 없었다. 있었다면, '이 말씀이 여기 있었구나?' 같은 정도였다. 성경은 사람을 위하여 쓰여진 것인데, 읽고 나니 온통 의문 투성이었다.


사사기에 여자의 시체를 12조각 내서 온 지파에 보내고 11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전쟁을 하는 일, 모세를 통해 일으키신 10가지 재앙 중에서 처음 몇가지를 따라 하는 이유(그런 능력이 어디에 있는지?), 왜 모세는 그깟 바위 한번 더 쳤다고 그렇게 수고했는데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지, 입다는 왜 딸을 바치는지, 하나님께 사람을 바치다니? 하는 등등의 수 많은 의문들만 얻은 것이었다.


신약도 의문 투성이였다. 언제는 부모를 공경하라더니, 또 언제는 '누가 네 부모냐?' 하는 것은 또 무엇이며, 바울과 베드로는 사도들인데 왜 책망하는지, 바울과 바나바는 왜 싸웠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해도 할 수 없는 내용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교회에 아무리 열심히 다니며 설교를 들어도 말이다. 덕이가 기억하는 그 시절의 모든 설교는 도덕 시간 같은 것이었다.


그런 의문들이 많았지만, 덕이는 아직 어리고, 또 아무도 그것을 풀어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성경의 의문을 푸는 것은 묻어 두었다. 어쩌면 <성경 통독한 사람>이라는 훈장을 달려고 시작한 성경 읽기가 덕이로 하여금 성경의 의문을 하나씩 풀어가는 삶의 여정으로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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