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2장) 욥기를 통해 보는 사탄 – 4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욥기 Date : 2019. 2. 4. 11:08 Writer : 김홍덕

사탄의 정체


사람들은 하나님께 육신의 삶과 그에 속한 물질의 어떠함을 구합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가늠하고, 또 그것으로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범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했는지를 가늠합니다. 욥기의 주제가 바로 그런 사람들의 관점이 하나님 앞에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책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존재의 신이신데,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답하시지 않고, 답답한 사람들은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세상이 귀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될 것이라 여깁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사람이란 존재를 갈고 닦아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동 양식을 쌓고 쌓아 하늘에 이르려고 바벨을 쌓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존재의 신께, DO와 HAVE로 대응하는 불순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물질적 존재, 형식을 가진 존재인 사람을 만남에 있어서는 누구 하나가 상대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먼저 사람과 같이 낮아지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사랑은 하나님께서 먼저 하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날 때에는 반드시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매개로서 말씀을 하십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바위를 부수는 바람이나, 돌을 태우는 화염으로 나타나기도 하셨지만 하나님의 그런 모습은 쉼 없이 나타나도 사람이 인지할 수 없고, 오히려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세한 음성으로 임하셨을 때에야 비로소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음성이라는 것이 사람의 세계에 있는 매개체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람이 어떤 존재로서 하나님을 대하느냐에 따라서 그에 맞는 존재로서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자기의 본성으로 삼는 사람에게 임하실 때에 사람은 그 임하심을 ‘하나님의 사람’이나 ‘천사’와 같이 인지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버리고 자기 육신의 정욕을 좇아서 하나님을 만나려 한다면 하나님을 만나는 매개는 사탄과 같이 임할 것입니다.


실재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 사탄이 어떻다는 둥, 마귀가 어떻다는 둥 하는 사람들의 관심사는 육신의 어떠함입니다. 육신이 아프면 기도하면서 ‘병마야 물러가라!’고 외치고, 육신이 어떤 욕심을 추구하면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칩니다. 사탄이든 마귀든 그것과 상관이 있거나 침범을 받는 세계에 속했다는 것은 사탄이나 마귀가 추구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관심사가 같으니 그런 것입니다.


욥기에 나오는 사탄은 욥의 의로움은 그의 부유함과 평안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로 떡을 만들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상하지 않으며,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관이 귀하다며 영광으로 여기는 것을 얻기 위하여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시험한 것에서 보듯이 사탄이나 마귀는 어디까지나 사람이 자기 육신의 평안을 추구하는 육신의 정욕을 좇아 하나님을 대할 때에 하나님이 그를 상대하실 때의 매개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사나 마귀나 모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그 의를 나타내시는 모습이요 도구인데, 하나님의 의를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으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의로운 모습으로, 하나님께 ‘밥 달라’, ‘돈 달라’ 기도하고 세상에서의 성공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그 형편이 나빠지거나 나아짐이 더디면 자신이 하나님께 무엇을 잘못 행하고 있다고 여기게 되고, 그렇게 되는 어떤 요인들을 사탄이다 마귀라 여기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화나고 열 받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사탄은 사람 안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불순종이 하나님을 만날 때에 하나님과의 접점 혹은 자신이 핑계 삼고 싶은 영적 존재가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서 이야기 해 왔듯,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께 불순종한 존재가 바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제 아무리 대단한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을 욥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한낱 하나님의 도구에 불구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에게 유일하게 주신 그 선택권을 육신의 정욕을 좇는 것으로 결정한 사람들이 그 추구하는 바가 방해를 받거나 이루지 못하게 될 때 그 이유가 자신들이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에 순종하지 않았다고 여기지 않고, 자신은 하나님을 잘 섬기려 하는데 방해하는 존재가 있어 그렇다고 핑계 삼고 싶어 하는 존재가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존재의 하나님이시고, 사람에게 육신을 주신 것은 그 육신을 소비하여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고자 하심인데 사람들은 오히려 그 육신의 평안과 복락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며 그것을 끊임없이 구하니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들어주실 하등의 이유가 없고, 오히려 그것을 방해하시는 것이 더 정상인 것이라, 사람들의 그런 모습에 대응하시려 보내시는 매개적 존재가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이렇게 제법 긴 글을 통하여 사탄(마귀)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에게 생소한 접근일 수 있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아 보이기도 하겠지만 세상에 많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존재의 하나님으로 믿고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존재 목적이요 정체성이며 삶의 의미로 아는 사람들에게는 사탄이나 마귀가 아무런 상관없습니다. 한 때 유행하든 말로 ‘그게 뭐예요? 먹는 건가요?’와 같은 수준의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으니 육신 안에 있는 육신의 각종 욕망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감사히 받으니 그것을 제어하느라 ‘사탄아, 마귀야 물러가라!’ 싸울 이유가 없고, 하나님이 주신 육신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에 사용하니 이 육신에 거하는 것이 육신을 벗고자 함이 아니라 덧씌우고자 함이라는 것도 무엇인지 알며, 질그릇이란 표현도 무엇인지 알 것이기에 그것을 사탄과 마귀와 연결하려해도 연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어떤 부분이라도 대전제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과 하나님은 유일하고 온전하신 신이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관리 소홀을 틈타서 타락해서 하나님과 대적할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대전제를 무력화시키는 가정인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가정이나 이론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의를 떠나 금송아지를 만들고, 바벨을 쌓으며, 세상의 가치관과 간음하여 그 가치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것이 여의치 않자 핑계거리로 삼고자 함이 더 큽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그 성품대로 지었기 때문에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좇을 수 있게 창조한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자신의 삶의 목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유일한 악함을 추구하는 그 모든 것이 바로 사탄이고, 그것에 대응하시는 영이 사탄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 신앙에는 하나님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자신이 만든 하나님이고, 사탄도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사탄과 같은 마음이 만드는 것입니다. 


존재의 신을 소유와 공로의 신으로 대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소유와 공로로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는 그 신이 하나님 같을지 모르지만 그 신이 곧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버린 하나님이요, 그 신을 창조하는 것이 자기 마음 안에 있는 사탄의 본성인 것입니다. 즉 사탄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벗어난 사람이 추구하는 모든 것, 그리고 그것이 의로 여기는 모든 것이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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