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를 마치며...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사사기 Date : 2017. 12. 18. 06:53 Writer : 김홍덕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부터 레위인의 첩의 일로 베냐민족속과 나머지 족속의 전쟁 이야기까지 모든 말씀이 사사기 안에 있어서 사람들이 왕이 없고, 하나님의 의가 육신으로 나타난 존재가 없을 때에 각기 자기가 올하고 여기는 대로 사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시기 위하여 사사기를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 일면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사기의 구조와 내용의 특이성 등을 주목하는 것은 손가락으로 ‘여기를 보라’며 가리킬 때에 손가락 끝을 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사기 전반에 걸쳐서 많은 이방인들이 쳐들어 온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타락한 탓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다가 아닙니다. 사사기를 대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 했더니 이방인들이 쳐들어와서 큰 환난을 당하는구나!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켜야겠다.’라고만 읽으면 사사기를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지은 죄가 무엇인지, 그 죄가 오늘날에는 어떤 죄인지, 나는 왜 오늘 이 사사기를 읽는지, 지금은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데 내가 범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목전에서 행한 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오늘 내가 우상에 머리 숙여 절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우상을 섬기지 않은 것인지 그 모든 것을 생각해보지 않을 것이라면 사사기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이방민족이라는 것, 이방의 신과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다른 종교에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한 것이 아닌 것을 믿는 모든 것이 다 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 그것뿐인데 여기에 과학을 더하거나, 인문학을 더하는 것도 이방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기왕이면 그런 것이 있으면 좋다고 말하는 그것이 바로 이방인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방인을 섬기는 가장 보편적인 것은 세상의 가치관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방신을 섬긴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가 아닌 것을 본질로 여기거나 삶을 기대는 것입니다. 교회를 크고 화려하게 지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크고 화려한 것=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생각이 바로 세상이 크고 위대한 것을 흠모하고 섬기는 것과 같은 것이기에 바로 이런 것이 이방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개인으로 본다면 세상에서 자기가 뜻한 대로 성공하는 것을 하나님의 복으로 여기는 그것이 바로 이방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개인이 바라고 뜻하는 것이 하나님 안에서 온전해지는 것이어야 하는데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에서의 성공>이라는 세상의 가치관을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접목하고 합한 것, 곧 이방신을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의 가치관을 좇아서 크고 화려한 교회, 많은 수가 모이는 교회, 헌금이 많이 나오는 교회,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많은 교회나 또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갈등과 다툼과 분쟁과 시기와 분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세상적인 기준에 의한 것입니다.


교회가 돈 문제, 성적인 문제, 교회나 교파 안에서의 권력의 문제 그리고 그런 문제와 연루되어 정치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 그 모든 것이 다 사사기가 말씀하고 있는 이방 족속이 쳐들어와서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개인도 자기가 하는 일이 잘 안 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고 실망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방인의 신, 곧 세상적인 가치관이 신앙과 결합되고 그것과 간음함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교회의 문제들 중에서 세상적인 가치관과 연루되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모든 갈등들,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모든 것들은 다 세상적인 가치관과 연루된 것들입니다. 사사기가 보여주는 모든 것이 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개인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있어서 십자가에 육신을 드리신 예수님과 같이 자기 육신을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일에 쓰느라 힘들고 지치는 어려움이 아니라, 세상에서의 성공을 담보하기 위하여 억지로 신념을 동원하고 의지를 북돋우면서 노력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인 기준에서 일정 수준이 되지 못하고, 육신이 평안에 이르지 못한 것을 늘 아쉬워하는 그 모든 한탄과 애절함은 다 세상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함을 인함인 것입니다. 다 이방인의 침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소망하는 것이 세상적인 기준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사사기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사기를 대함에 있어 이스라엘의 실패한 역사를 읽듯 하거나 동화 같은 이야기로 읽거나 아니면 타락하면 벌주시고 회개하면 복 주신다는 것으로 읽는다면 이는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사기의 진정한 핵심은 사람이 그 마음에 하나님의 의가 아닌 세상의 가치관과 신앙을 접목하거나, 세상에서 성공을 바라며 신앙생활을 하면 그 세상적인 기준으로 인하여 끊임없는 갈등을 겪으며 살 것이란 경고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사와 같이 그 심령 안에 하나님의 의가 생명의 본성으로 있어 그 본성으로 인하여 살아가게 되면 사사기에 나오는 그 모든 갈등을 이기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사기는 이렇게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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