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1:20-23) 영생을 이루는 삶의 본질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유다서 Date : 2017. 12. 16. 08:09 Writer : 김홍덕

유다 사도는 서신의 끝에서 <어떤 이들>이라는 말로 사람들을 분류하여 사람에 따라 긍휼히 여기라고도 하고, 불에서 건져내라고도 하고,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입어서 더러워진 옷이라도 싫어하고 두려움을 가지고 긍휼히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들을 분류하는 기준에 대하여는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이 서신의 전반에 흐르는 서신의 목적을 기준으로 가늠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긍휼이 여기고 어떤 사람을 그 입었던 옷도 싫어하는 사람으로 여겨야 할까요? 여기서 특별히 궁금해지는 것은 그 입었던 옷까지도 싫어하라고 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의 문제일 것입니다. 유다 사도는 특별히 그 사람들에 대하여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옷은 단순하게 의복이 아닙니다. 이는 그 사람의 지위, 신분과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심판을 받으실 때에 예수님이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했다고 왕을 상징하는 홍포를 입힌 것도 그 때문입니다.


육체로 더럽혔다는 것은 오염시켰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성경 속에 있는 말씀입니다. 즉 더러움과 죄와 악은 모두 성경이 말씀하시는 죄와 악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육신으로 더럽혔다는 것은 육신을 그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은 모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육신이 가진 존재의 목적이 있는데 그에 합당하지 않은 삶으로, 그에 합당하지 않게 육신을 사용하는 것이 바로 육체로 더럽혔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육신으로 더럽힌 옷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육신을 주신 목적을 알지 못한 체 이루어 낸 옷으로 표현되는 자기 신분과 같은 정체성은 다 싫어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을 주신 목적과 의미도 모른 체 세상에서 성공한 모든 성공은 싫어할 만한 것이라는 것이고, 그런 성공을 바라볼 때에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악인 것을 알고 두려워하되 그런 성공에 도취한 이들을 긍휼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다 사도의 권면은 앞서 이야기한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의 긍휼을 기다리는 일>의 실체적인 내용입니다. 영생을 이루는 것이 의심하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 불에서 구원하고, 육신의 목적을 알지 못함에도 이루어 낸 지위와 성공을 두려워하되 그런 사람들을 볼 때는 또 긍휼하게 여기는 이런 모든 삶의 모습들이 바로 영생을 이루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황금률 그대로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이나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볼 때 교만하고 의심 많은 사람들과 같은 이들을 싫어합니다. 심지어 신앙 안에서는 자신이 만든 사람도 아닌데 자신이 심판해서 ‘저런 꼴로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삶은 영생이 없고, 성령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성령이 그 마음 안에 있으면 사람의 교만도, 분내는 것도 다 사람의 연약함을 인함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의심? 그 의심 없이 신앙 안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걸린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세상의 성공을 빌면서 한편으로 성경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의심해보지 않는다면 신앙 안에 들어 올 수 없기도 합니다. 의심하는 것은 온전한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육신을 하나님이 주신대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에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런 섬김이 의심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확신을 얻을 수 있는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불 속에서 사람을 구하려면 불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하러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이 그것입니다. 육신은 바로 그런 것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삶은 그 속에 성령으로 잉태된 그리스도의 생명 본성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 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런 삶을 살아가는 그 여정이 바로 영생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을 이루는 것이고, 그것이 푯대를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삶이고, 하나님 아들의 삶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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